7월 관세 면제 등 인센티브 제공 후 급성장
日정유사 배불리기·국내 업계 역차별 지적도

석유전자상거래제도가 시행 9개월차로 접어들며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1월 일평균 거래량은 467만ℓ(75억원·2만9389배럴)로 개장 초기 4월에 비해 3891.6%가 증가했으며, 본격적으로 거래가 활성화된 7월과 비교해도 132.3% 늘어 정부 3대 석유정책 중 가장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무적인 결과에 정부는 인센티브 제공을 내년까지 확장하고 참여자격을 완화해 시장을 더 키우겠다고 밝힌 상태. 반면 ‘역차별’을 통해 유통시장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질 않는다. 2012년 석유전자상거래제 현황 및 보완점을 짚어 봤다.

▲ 석유제품 전자상거래 개장식에서 관계자들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도입배경-

석유전자상거래제는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 중인 3대 석유정책 중 하나다. 한국거래소 파생상품시장본부가 추진하며 정식 명칭은 ‘석유제품 현물 전자상거래 제도’다. 알뜰주유소·혼합판매와 마찬가지로 국내 석유시장 유통구조 개선을 위해 도입됐다.

전자상거래제의 핵심은 매수자와 매도자의 직접 연결. 증권사가 중간 역할을 하는 주식시장과 달리 석유전자상거래 중개자 없이 인터넷 옥션과 같이 매수자와 매도자가 직접 연결된다. 정유사, 수출입업자, 대리점 등이 공급을 담당하는 매도측, 대리점, 주유소 등은 수요자인 매수측으로 참여할 수 있다. 거래 대상은 상표별(4개 정유사 상표, 자가상표, 알뜰상표), 출하지(최대 20여개)별로 자동차용 보통휘발유와 경유만 상장됐다. 거래가격은 최소 2만ℓ를 기준으로 ℓ당 원으로 매수, 매도 호가(1틱=0.5원)가 제시되며 거래가 맺어지면 체결가격이 발표된다.

공급자와 수요자의 평등한 거래 구축을 겨냥한 방식이다. 1997년 석유산업 자유화조치 이후 공급자, 즉 정유사의 지위가 더욱 공고해져 일방적으로 공급가격을 결정, 주유소가 이를 기름값에 반영하는 구조였다. 전자상거래제는 다양한 공급처의 가격을 공개해 수요자에게 가격 적정성을 직접 판단할 수 있게 해 가격결정권을 부여했다.

삼성토탈 등 수입사를 참여시켜 경쟁을 촉발해 유가 안정화에 기여하겠다는 의도도 있다. 현재 국내 정유업계는 4사 독과점체제로 여러 차례 가격담합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개장일 “전자상거래가 활성화 전반이 정유사 간 경쟁을 촉진, 기름값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 석유전자상거래 거래 흐름도
-면세 ‘인센티브’ 후 급성장-

지난해 3월 30일, 개장 첫날 거래는 고작 경유 3단위(6만ℓ). 6월 4일까지 두달여간의 거래량도 휘발유 11만ℓ, 하루 평균 거래량은 1만5100ℓ에 그쳤다.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한달 평균 판매량이 대략 20만ℓ(1000드럼) 정도임을 고려하면 두달간 거래량이 주유소 5개의 한 달 판매량에 불과해 사실상 개점휴업상태였다.

정부가 꺼내든 부흥책은 ‘인센티브 확대’. 7월부터 석유전자상거래용 수입석유에 대해 3.0%(ℓ당 약25원)의 할당관세를 면제했다. 바이오디젤 2% 혼합의무도 30만㎘ 이상일 때로 완화했다. 또 ℓ당 약16원의 석유수입부과금을 환급했고, 세액공제율 0.5%로 확대했다.

파격적인 혜택에 시장은 바로 반응했다. 7월 일평균 거래량 353만ℓ를 기록, 전달(37만ℓ)보다 828.9% 늘어났다. 이후 8월 610만ℓ, 9월 7352만ℓ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10월(628만ℓ), 11월(467만ℓ)은 다소 줄었으나 한국거래소는 “12월까지 300만배럴에 달했던 경유할당관세수량이 11월말까지 260만배럴이 소진되는 등 조기매매형상을 보인 것이 경유 거래량 급감에 영향을 미쳤다”며 “전자상거래를 의식한 정유사의 공급물량 증가로 인한 경쟁 심화도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11월 들어 급증한 휘발유 거래량도 주목할 만하다. 11월 휘발유 일평균 거래량은 45만ℓ로 4~10월의 5만ℓ의 9배에 달했다. 11월 7일 석유공사가 삼성토탈 및 수입 공급분의 휘발유를 전자상거래에서 본격적으로 공급함에 따라 최근 휘발유 일평균 매매량은 60만ℓ이상으로 향후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경유 편향 거래로 얻은 ‘반쪽시장’이라는 오명을 벗어날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유가 하락에도 일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경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전자상거래 인센티브가 소비자가격에 49.4%~85.5% 반영된 것으로 추정했다. 전국평균대비 ℓ당 2.79~ 13.05원 추가인하 됐다는 것. 국제유가와 정유사 공급가격 대비 가격 비교도 가격인하 유도효과를 방증한다. 국제 석유제품가격이 오른 10월 5주를 기준으로, 전자상거래 경유판매가격은 주간평균 1595.9원으로 6월 4주에 비해 30.55원(1.9%) 상승했다. 국제가격($17.57/배럴, 16.1%)과 정유사 공급가격(70.81원, 4.5%)의 상승폭에 비해서는 훨씬 작은 수준이다.

한국거래소 최욱 부장은 “석유전자상거래가 정유사의 가격인상을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앞으로 석유공사와 협력해 전자상거래를 통한 알뜰주유소 공급을 늘리는 등 전자상거래 활성화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 석유전자상거래 월별 유종별 일평균 거래량
-공급선 다각화 급선무-

정부의 중점적인 지원을 통해 빠르게 자리잡았지만 여전히 개선점이 산재해 있다. 한국거래소는 11월 19일부터 △일반판매소의 직접 참여 허용 △가격모니터링 도입 △혼합판매 종목 상장 근거 마련 △협의상대거래 종목별 시세 장종료 후 공개 등이 포함된 업무규정 개정안을 시행중이다. 지경부 역시 12월 3일 △2013년 인센티브 유지 △전자상거래 연계 구입자금 대출시스템(최대 30일까지 우대금리 적용) 구축 △가격인하 미흡 대리점·주유소의 단계적 시장 참여 제한 등을 골자로 하는 개선책을 내놓고 대대적 보수를 예고했다.

하지만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공급선 다각화와 관련된 대책은 없다. 현재 전자상거래 활성화의 최대 수혜자는 일본 정유사다. 2012년 1~10월 일본산 경유 수입량은 364만배럴로 10개월간 물량이 지난 4년치(231만배럴)를 합친 것보다 많다. 수입 금액도 5년전 4588만달러에서 4억6818만달러로 급증했다.

까다로운 국내 환경기준에 따른 현상이다. 국내 석유 황성분(PPM)기준은 약 10PPM 이하로 미국(최저치가 30PPM 이하), 중국(150PPM 이하), 대만(50PPM 이하)보다 엄격하다. 국내 기준과 비슷한 유럽연합은 거리가 멀어 운송 면에서 불리하다.

하지만 면세 혜택이 주어진 전자상거래에 일본산 경유만 유통되고 있는 형국이라 세금을 들여 대일무역적자를 키운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지경부가 중국의 페트로차이나를 통해 10만배럴을 수입했지만 이 또한 일본산 경유가 절반 이상 섞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선이 한정되면 또다른 독과점 형태가 되므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실효성 있는 모니터링 제도도 절실하다. 9월 국감에서 다수의 지경위원이 모니터링 제도가 전무해 인센티브가 소비자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현재는 전자상거래시스템으로 석유를 공급받은 주유소의 판매 수익을 월·분기별로 평가하는 방식을 도입, 유통업자가 전자상거래를 통해 산 가격은 거래소가, 주유소가 소비자에게 판 가격은 지경부가 각각 모니터링한다.

문제는 유통업자가 전자상거래를 통해 구입한 석유값 측정의 정확성이다. 장외에서 미리 매도자(수입업자)와 매수자(유통업자)가 가격을 정하고 돈은 전자상거래시장에서 오가는 ‘협의매매(협의상대거래)’ 때문이다. 각종 세제혜택을 받기 위해 송금과 수금을 전자상거래시장에서 하고 있어 경쟁 효과는 사라진다. 실제 전자상거래 전체 물량 중 협의매매가 4분의3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현 상태에서 가격 모니터링제의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하나 거래소 관계자는 “협의매매도 경쟁매매와 마찬가지로 프로그램을 통해 돈이 오가는 구조”라며 “거래소 측에서 매매 가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논란없이 양 쪽이 납득할 만한 제도 개선이 요구하다.

무엇보다 정부지원 없이 자생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나갈 필요가 있다. 현재 활발한 거래는 ‘면세’ 정책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가격인하분이 결국 세금이라는 것. 관련업계에서 ‘역차별’이라고 반발하는 이유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기름값이 비싼 이유는 가격의 절반을 차지하는 유류세 때문”이라며 “국내 정유사 세금은 그대로 두고, 수입석유에 관세면제 혜택을 주고 가격 인하 효과가 있다는 정부 발표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바이오디젤업계 관계자도 “전자상거래로 인해 1달 2835㎘, 약 8.7%의 공급량이 감소한 것으로 추정한다”며 “수요감소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당장은 거래활성화를 위해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계속하기에는 세수 확보 등에 문제가 많다. 결국은 자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정유사의 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미끼를 제공하는 한편, 수입사가 본격적으로 시장을 예측해 물량 거래에 나설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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