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지름이 1만2700km인 공이 초속 30km의 속도로 움직인다면 얼마나 큰 굉음이 날까? 바로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경우이다. 엄청난 굉음이 날 텐데 정작 그 위에 살아가는 인간은 듣지 못한다. 이처럼 사람이 인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시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너무 큰 소리를 듣지 못하듯이, 너무 긴 시간 또한 우리 인간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특히 정밀하게 시간을 측정하고 시간에 의해 보상이 이루어지는 산업사회가 되면서 우리의 시간 개념은 점점 더 미분화되고, 장기적인 고려는 점차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신경을 쓰는 시간의 길이는 어떨까? 자신의 부모와 자식, 그리고 손자까지 신경을 쓴다고 해도 100년 내외에 그친다. 정작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는 지구의 시간 이른바 ‘deep time’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시간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논쟁을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지구에 발붙이고 사는 한 인간으로서 언제부터 시간이 시작됐고 그 안에서 인간이라는 종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따져보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우주 혹은 지구의 시간에 대한 고민들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동양에서는 역경에 근거하여 선천과 후천을 합쳐 12만9600년이라는 시간을 상정했던 사례도 있고, 마야인들은 기원전 3114년 8월 시작해 기원후 2012년 12월21일까지 약 5126년의 시간을 예측하고 있다.

서양의 경우 플라톤은 7만2000년의 주기를 주장하고, 17세기 기독교도인 James Ussher 같은 이는 성경에 의거해 기원전 4004년에 지구 시간이 시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18세기 지질학자 James Hutton은 지구가 수백만 년이나 오래된 별임을 주장했다.

이후 새로운 기술과 과학이 적용되면서 우주와 지구의 역사에 대해 보다 정확한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을 보면, 우주 즉 시간의 시작은 137억년 전이고, 태양계가 형성된 것은 46억년 전이라고 한다.

지구는 45억4000만년 전에 만들어졌고, 생명의 흔적이 나타난 것은 38억5000만년 전이다. 5억3200만년 전 캄브리아 대폭발로 다양한 생명체가 등장하고 이후 다섯 번에 걸친 대멸종이 있었다.

6500만년 전 포유류가 등장하고 유인원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등장한 것은 390만년 전, 그리고 네안데르탈은 35만년 전, 호모사피엔스는 24만년 전이었다.

지구의 역사를 24시간으로 환산하면 인류가 지구 상 등장하는 것은 마지막 5초 이내에 해당된다. 즉, 인간은 지구 위에 서식하는 생명체 중 가장 나중에 등장한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가 시작되는 이 5초(24만년)를 다시 24시간으로 환산하면, 인류가 아프리카를 벗어나는 시간은 오후 6시, 농업 혁명이 일어나는 것은 오후 10시50분, 최초의 역사상 도시인 예리고(Jericho)가 나타난 것은 11시 직전이다.

11시 30분경 스톤헨지 건설이 시작되고 세계 4대 문명이 출현한다. 11시 45분경 공자와 부처가 태어나고 몇 분 뒤 예수, 그 몇 분 뒤에 마호메트가 각각 태어난다.

11시 58분이 되어서야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마지막 1분에 인구는 70억을 넘게 되고, 마지막 20초 동안에 그 이전 11시간59분40초 동안보다 더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써버린 셈이다.

지구의 시간으로 볼 때 인간이라는 종은 가장 나중에 나타나 다른 생명체와 함께 나눠야 할 지구의 자원을 혼자서 먹어치우는 공룡과 다를 바 없다.

인류 또한 생명의 진화과정에 존재하는 하나의 종이라면, 우리는 모든 생명체와 같은 뿌리이고, 그들이 없으면 인류의 생존도 장담할 수 없음은 명약관화하다.

공룡이 어느 날 소리 없이 멸종했을 때, 지구가 이를 슬퍼하며 울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인류가 사라져도 지구는 울지 않을 것이다.

과연 여섯번째 대멸종을 피할 수 있을까? 대답은 인간 여러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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