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남 뒤엔 이별이 있다.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진다.

인생의 무상을 의미하는 이 말이 요즘 에너지 업계를 요약하는 한마디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남은 임기와 상관없이 공기관 수장들은 일제히 일괄사표를 제출하고 처분을 기다리는 것이 미덕인양 여겨져 오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정권창출에 기여했다고 자평하는 인물들은 논공행상의 서열대로 줄지어 낙하산을 움켜잡고는 했다.

하지만 이번 제18대 정권에서는 분위기가 좀 다르지 않을까 살짝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워낙 합리성과 전문성을 강조해 오신 데에다가, “우리가 남이가”식의 아날로그적, 마초적 감성과도 거리가 먼 얼음공주 박 대통령이 보위에 오르지 않았던가.

그 때문인지, 계량화할 수 있는 성과도출 면에서 비교적 유리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기관장들의 거취에 대한 움직임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기대는 보기 좋게 무너졌다.

박 대통령이 바로 그 전문성 앞에 정권의 정책목표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이른바 코드인사를 주문하면서부터다. 전문성과 코드인사, 전혀 다른 성격의 두 가지 요소를 두고 갈팡질팡하던 기관장들은 그래도 전문성이 우선시 되지 않을까 기대도 하고, 눈치도 살폈겠다.

그마저도 ‘일괄사표를 내라’, ‘인사가 늦어지고 있다’는 등의 윗전에서의 언급이 있은 후부터는 모두 사라지고, 줄줄이 사퇴는 물론 후임 기관장 인선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가스공사, 지역난방공사, 에너지관리공단, 석유관리원 등 에너지 공기관들도 예외 없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이제 낙하산 인사에 대한 우려가 자연스럽게 따라 붙는다. 어쩌겠는가. 전문성보다는 정책목표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이 중요하고, 게다가 인생은 회자정리인 것을.

그래도 에너지 업계 공기관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며 진정한 전문성을 갖춘 인사라면 거자필반(去者必返)을 되새겨 봐도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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