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신규 원전과 핵재처리가 가장 큰 과제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위원회 구성해야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어떻게 시작해야 할 것인가?

정부가 조만간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에 대한 공론화 계획을 추진할 계획이다. 2004년 12월, 제253차 원자력위원회 결정을 통해 ‘중장기적 논의를 거쳐 국민적 공감대 하에 추진’한다고 결정한지 거의 10년만의 일이다.

하지만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계획이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간 정부-원자력계-시민사회진영의 역할과 입장을 볼 때,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공론화의 필요성’과 ‘상호신뢰’일 것이다. 그간 핵발전소 건설에 지속적으로 반대해 온 시민사회진영과 지역주민들이 왜 정부의 공론화 계획에 동참해야 할 것인가?

관리계획 없는 사용후핵연료는 핵발전소 반대진영의 주요 반대 근거 중의 하나였고, 이 지적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발전소 건설을 추진해 온 상황이 되니, 이제 그 책임을 나누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물론 상대진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는 전력의 30% 정도를 핵발전으로부터 얻고 있다. 핵발전소에 대해 찬성하든 반대하든 모두 전기를 사용하고 있기에 그만큼의 책임이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간 핵발전소 반대진영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에 대한 ‘책임감’은 거기까지이다. 자신이 원치 않았고, 심지어 강력히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수 없이 만들어진 골치덩어리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일말의 책임 말이다.

많은 이들이 사용후핵연료 공론화계획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필자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필요성’ 주장에는 20여년이상 찬성과 반대를 중심으로 대립해오던 역사적인 흐름이 빠져있다.

그간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이 투입되면서 핵발전을 둘러싼 논쟁이 있었는가? 그리고 그 흐름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인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현재 국민들의 원자력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곱지 않다. 작년 연일 이어진 한수원의 납품 비리사건, 고리 1호기 정전은폐사고 등으로 안그래도 불신의 벽이 높은 원자력계에 더 큰 불신이 드리워져 있다.

따라서 공론화 논의의 시작은 매우 공식적이고 제도적으로 접근하되, 이 논의를 함께할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논의에 집중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아직도 많은 이들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는 이미 정해진 결론(중간저장시설 착공)으로 가는 요식행위일뿐이다’, ‘공론화논의를 통해 정부가 신규 핵발전소 건설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것 아니냐’는 등의 의구심을 갖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공론화의 취지는 퇴색하고 누구도 이 논의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정부 스스로가 진정성을 보이고, 이러한 물음에 정확하게 답해야 할 것이다.

 

공론화 논의의 첫번째 과제 : 신규 핵발전소 문제

상호 신뢰와 의구심 해소 등 기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가 급물살을 탈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부적인 논의에 들어가면 반드시 부딪히게 될 몇가지 과제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신규 핵발전소를 둘러싼 문제이다.

신규핵발전소 건설과 핵폐기물 문제의 연계는 오래된 주제이다. 2003년 부안사태가 발생한 이후 당시 열린우리당의 중재로 정부와 부안대책위, 시민사회진영이 협의를 진행할 때에도 신규 핵발전소 건설과의 연계문제는 중요한 쟁점이었다. 또한 2007년 사용후핵연료 TF가 국가에너지위원회 산하에 설치될 때에도 이 문제는 또다시 불거진바 있다.

2003년에는 반핵진영 내부의 논란 속에 이 두 가지 문제를 별개로 논의를 진행하다가 정부 측의 협상결렬로 논의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한 바 있고, 2007년에는 사용후핵연료 논의와 별도로 원전적정비중 TF를 구성해서 두가지 문제가 동시에 논의된 바 있다.

신규 핵발전소 건설과 사용후핵연료 문제가 연계될 수 밖에 없는 것은 논의해야할 사용후핵연료의 양이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다. 현재 23개의 핵발전소에서 매년 약 800톤의 사용후핵연료가 만들어지고 있다.

향후 핵발전소의 갯수가 현재의 2배 정도로 늘어날 계획이므로, 사용후핵연료의 양은 말그대로 폭증하게 될 것이다. 특히 삼척, 영덕 등 신규지역의 핵발전소 건설이 예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향후 정확한 양을 계산하기 힘들뿐더러, 전세계적으로 기술적·사회적으로 관리방안을 찾지 못하는 사용후핵연료의 양을 계속 늘리는 상황에서 이 관리대책을 공론화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필자는 삼척, 영덕 신규 핵발전소 부지에 대해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논의 완료시까지 계획을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현재 이들 지역은 핵발전소 건설을 위해 부지 예비고시는 되어 있으나,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반영되어 있지 않은 ‘유보’상태이다.

하지만 이는 형식적인 유보일 뿐 한수원은 해당지역 토지에 대한 물건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등 사실상 내부적으론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단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척, 영덕 핵발전소 건설 중단조치는 핵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찬·반 논쟁을 잠시 뒤로 하고, 공론화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장치이다. 공론화 프로그램은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프로그램 진행 당시의 주변 정세변화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큰 쟁점 하나를 뒤로 늦추면서까지 공론화 프로그램에 집중하겠다는 정부의 진정성과 의지를 보여줄 때, 공론화 프로그램은 더욱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수원 스스로가 밝힌 이들 지역 핵발전소 건설일정과 공론화위원회 일정을 볼 때 이러한 주장은 결코 무리하지 않은 제안이라는 것을 정부 스스로도 알고 있을 것이다.

 

공론화 논의의 복병, 한미원자력협정과 핵재처리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논의의 또 한가지 큰 쟁점은 한미원자력협정 논의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핵재처리·파이로프로세싱 문제이다. 현재 정부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이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방식이 경제성이 있으며, 차세대 에너지원으로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문제제기를 반영하기 보다는 핵연구계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파이로프로세싱이 포화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문제의 해결책이라며,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기술을 통해 2024년까지 포화될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고 문제를 연계시키고 있다.

정부의 계획대로 향후 10년간 미국과 공동연구개발을 추진하더라도 2024년까지 파이로프로세싱 공장을 완성하고 이를 통해 생산되는 핵연료를 사용할 신형원자로의 상용화를 완성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논의가 나오고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사회에서 이 문제가 충분히 숙지되지 못한 채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용후핵연료 논의는 현행법상 고준위방사성폐기물로 분류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가 재활용가능한 자원인지, 폐기해야할 폐기물인지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핵재처리에 대한 연구를 단지 다양한 연구개발과제 중 하나로만 생각할 수는 없다. 천문학적인 연구비용과 시간이 들어가는 것도 있지만, 이번 한미원자력협정 논의에서 보듯 이 연구는 국제사회가 관심을 갖고 있는 핵확산과 직접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파이로프로세싱을 재활용이라며 핵확산과 상관없는 기술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미국을 비롯 국제사회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래 먹거리 확보, 제한없는 연구환경 등 나이브한 근거로 핵재처리 문제를 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져야할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이외에도 공론화위원 구성, 운영 및 실제 논의에서 다루어야할 핵심적인 쟁점은 많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의 핵심에는 ‘진정성’과 ‘신뢰’가 있을 것이다. 설사 조금은 엉성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상호신뢰가 전재된다면, 이러한 것들은 문제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현재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고 해서 공론화 계획을 그냥 없던 것으로 하거나 한쪽만이 참가하는 일방적인 공론화가 된다면 그간 10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과거 19년동안 9차례나 선정과 백지화를 반복하고도 지질문제로 공기가 지연되고 있는 중저준위 핵폐기장의 과오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조금 늦어보이더라도 충분한 논의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빠르다는 것이 그간 우리사회가 겪어온 교훈이다.

이러한 교훈을 바탕으로 이번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계획이 추진될 수 있기를 다시 한 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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