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권홍 원광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석유·가스 파이프라인은 10%의 철강과 90%의 정치로 이루어진다’는 표현은 파이프라인 프로젝트의 정치성을 아주 잘 표현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정치성은 파이프라인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회사는 두 가지 핵심적인 능력이 있는데, 하나는 지질(Geology)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Politics)”라는 다국적 석유회사 대표의 말을 통해 상류부분의 자원개발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해외자원개발은 자본·기술·노하우는 물론 자원보유국의 정치·경제·법제도·역사·사회·문화·환경 등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이해, 그리고 자원보유국을 둘러싼 국제정치적 상황이 우호적이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의 인식 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자원개발 정책은 국제정치적·문화적·사회적 접근보다는 단기적인 시각에서 경제·기술적인 측면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시장의 상태·가격·해당 자원을 개발할 수 있는 기술 등의 문제가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이지만, 20년 이상의 장기적 투자인 자원개발은 국제 정세의 변경·자원보유국 내부 정치지형의 변화·개발이 이루어지는 지역의 사회, 문화적 상황·인권과 환경 등의 문제 또한 사업의 예측가능성과 성공가능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예를 들어,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과 비교적 쉬운 기술로 석유·가스를 개발할 수 있는 나라 중의 하나가 이란일 것이다. 그런데 미국과 이란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이란에 대한 자원개발투자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또한 호주에서의 광물개발과 관련하여 언론에 보도되는 쟁점은 원주민들과의 갈등, 환경문제 등이다.

메이저 자원개발 회사들은 이런 문제들에 대처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국제정치 및 개별 국가의 정치적·법적·사회문화적 위험에 대한 자료를 구축하고 있고, 그렇지 못한 회사들은 관련 서비스회사들로부터 비싼 돈을 주고 제공받고 있다.

우리의 자원개발 공기업이나 연구기관들은 어떠한가? 인터넷이나 개인적인 관계 또는 외교부를 통해 취득할 수 있는 정보를 나름대로 가공해서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도 정치·제도·사회·문화 분야의 전문가 그룹까지 포함하는 전반적인 연구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물론 회사들이 해당 자료를 취득하고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국제적인 자원개발회사가 되려면, 비싼 돈을 주고 내부의 정보까지 제공해야 하는 외부 컨설팅보다는 내부전문가의 육성을 통한 정보와 능력의 내부화가 성공적인 자원개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 않겠는가?

기업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자원개발의 장기적 효율성을 확보하고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지원을 제도적으로 시행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국가가 대륙별 정치·법·문화·사회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시작해서 멀리는 국가별, 지역별 각 전문가를 양성하고, 이들로 하여금 관련 위험성을 분석해서 자원개발을 진행하려는 회사들은 물론 자원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제공하려는 금융기관들에게 위험성 판단을 위해 필요한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다만, 이런 주장이 자원개발에 대해 외교부가 주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 오해되지는 않기 바란다. 왜냐하면 자원개발에서의 ‘정치’는 국가들 사이의 외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정치·법·사회문화·환경 등을 포함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자원개발이 복잡하고 혼란한 모습을 보이게 된 원인은 통일된 거버넌스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자원개발에 대해 정부의 모든 부처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해주는 것은 옳지만, 모든 부처들이 자기가 주도하려 하는 경우 지난 정권에서 발생했던 부작용을 더 심화시키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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