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수급계획 잘못 대처한 정부·공기업 책임 커
시장원리 도입 등 수급체계 체질개선 필요

유난히도 무더운 올 여름, 하루 중 최고 기온이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가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매일같이 전력수급 경보가 내려졌다.

사상 최악의 전력수급 위기가 예상됐던 지난 8월12일부터 에너지의 날인 8월22일까지 공휴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경보가 발령됐다.

소비하는 대부분의 에너지를 외국에서 들여와야 하는 우리 현실에 비춰 에너지를 아끼자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물론 이와 같은 전력난이 발생된 데에는 불량부품 사용에 따른 일부 원전의 가동중단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전력난이 단지 이것 때문일까? 시험성적서 위조가 없었더라면 과연 올여름 전력수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까.

오늘의 전력난과 같은 에너지 위기는 근본적으로 수급계획을 잘못 수립하고 대처한 에너지 공기업과 이들을 감독하는 정부에 그 책임이 있다. 하지만 비난과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이것이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율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은 우리의 현실이다.

현재의 전력난을 전력 수급만의 관점으로는 근본적인 해법을 찾기 어렵다. 에너지의 종합적인 수급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지금의 에너지 문제는 시간적, 공간적, 에너지 종류별 수급불균형과 절대적인 사용량 증가로 요약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이런 구분 없이 강제적인 방법으로만 해결하려 해왔다. 절약을 강요해서 소비를 무조건 억제하는 것이 그것이다. 수요가 많을 때 상대적으로 비싼 요금을 물리려는 시도는 그나마 최근의 대책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수요자의 불편과 비용 상승이 뒤따른다. 수요자인 국민의 불편과 비용을 최소화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비상시 불편을 감내하자는 호소는 그 다음 순서가 돼야 마땅하다.

▲발전 후 버려지는 배열 26%, 대안마련 해야

에너지 수급불균형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스마트그리드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불필요한 수요를 줄이고 수요가 클 때 그 수요를 다른 시간대로 이동시켜 불균형을 해소하자는 방법이다. 하지만 수요차이가 매우 큰 여름과 겨울철 수요를 감당하기에 이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다음으로 가능한 방법이 발전 후 버려지는 열을 냉방과 난방에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국내의 주된 발전연료는 원자력과 유연탄으로 환경상의 이유로 수요처로부터 멀리 떨어져 설치된다. 배열을 이용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 도시 근교에 도시가스를 이용하는 복합화력(열병합) 발전소가 있지만 높은 원료가격으로 인해 연간 가동률과 배열 이용률이 낮아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전기는 생산과정에서 반드시 열이 발생되고 대부분 바다나 하천 또는 대기 중으로 버려진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발전효율은 대략 35% 수준이다. 전기를 만드는데 우리나라 전체 에너지사용량의 40% 정도가 사용되니, 발전 후 버려지는 발전배열은 무려 26%에 달한다. 생산지로부터 수요처까지 장거리 전력수송에 따른 송전손실은 제외한 수치다. 2010년을 기준으로 316억달러의 외화가 버려지는 셈이다.

같은 기간 우리가 자동차를 수출해서 벌어들인 외화의 60%와 맞먹는 엄청난 양이다.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열은 버리면서 냉방이나 난방에 필요한 열과 온수를 만드는데 다시 전기를 쓰는 우를 범하고 있다.

▲도시와 에너지 조화, 에너지 재활용 등 대처 필요

그렇다면 발전배열을 더 많이 그리고 효과적으로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요즘과 같은 전력난의 주범인 냉난방용 열수요는 주로 기후에 따른 것으로, 이를 최대한 발전배열로 충당해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우선 도시계획과 에너지계획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시설의 설치단계부터 배열을 충분히 쓸 수 있는 계획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의 도시계획 과정에는 이를 고민하는 절차가 없다. 에너지사용계획 협의제도가 있지만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에너지 요금제도도 보다 유연해져야 한다. 중앙에서 통제하는 경직된 요금체계로는 경제적이고 안정적인 시설의 설치와 운영이 어렵다.

둘째, 생활필수품만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도 회수해 다시 씀으로써 소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에너지자원은 도처에 널려 있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도시에서는 쓰고 버려지는 양도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에너지를 순환 이용하기 위해서는 각종 유틸리티 시설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설치, 운영되어야 한다. 여기서 유틸리티 시설이란 도시의 기능유지에 필수적인 전기, 가스와 열 등 에너지 시설과 상수도시설, 각종 폐기물과 하수를 처리하는 환경시설 등을 말한다.

이들 시설들은 서로 유사한 기능도 많고 또 연계되어 운영되는 경우 상호 보완적인 이득도 많아 가능한 통합되어 운영되어야 한다. 지금은 발전시설과 소각시설이 지역난방시설과 소극적으로 연결되는 등 소극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마지막으로, 국내의 에너지 소비와 공급은 전국 단위의 대규모 체계로 이뤄져 왔다. 과거 중앙정부가 주도했던 산업화, 도시화 시대에는 이 같은 대규모 시스템이 효율적이었다. 대량 소비에 따른 에너지 수요의 폭발적인 증가에 대응하기에 대량공급체계는 제격이었다. 수급체계의 효율을 따지기에 앞서 규모의 경제가 합리적이라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역별로 차이가 크고 다양한 에너지 수급환경을 중앙정부와 전국 규모의 에너지 공기업이 떠맡기에 이들의 짐은 이제 너무 무겁다. 국민의 협조로 하나의 고비를 가까스로 넘긴다 해도 또다시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가 터질지 모른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전력을 포함한 에너지 수급체계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교통이나 문화적 환경이 다르듯이 에너지 환경도 지역마다 크게 다르다. 산간지역이나 도서지역과 같이 인구밀도는 낮으면서 에너지자원이 비교적 풍부한 지역이 있는가 하면, 대도시와 같이 에너지 자급률이 제로에 가까운 지역도 있다.

그럼에도 에너지를 소비하는 데는 전국 어디서나 같은 수준의 비용을 내는 데 익숙해져 있다. 여기서 오는 폐해가 적지 않다. 원자력이나 화력발전에 의해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은 에너지자원이 풍부하면서도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 생산량은 거의 없이 많은 양의 에너지를 쓰면서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을 지불하는 도시지역에서는 절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시장이란 기존의 그것과는 개념이 전혀 다르다. 지금의 중앙 공기업과 각각의 지역이, 지역과 지역이 거래하는 형태다. 에너지 환경이 열악한 지역은 보다 비싼 가격으로 에너지를 사서 쓸 수밖에 없다. 자연히 에너지 소비에 따른 비용도 증가할 것이다.

이런 지역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차츰 외면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에너지 수요를 줄이려는 노력은 물론 한 번 쓴 에너지도 회수해서 다시 쓰려 하고, 초대형 건물과 같이 에너지의 수급균형을 심하게 깨뜨리는 사업장은 환영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노력은 해당 지역의 지방자치단체가 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에는 이미 관할 지역 내에서 에너지를 소비하는 건물과 시설 등에 대한 인허가권이 주어져 있다. 그러나 시설의 인허가 시 교통이나 환경 영향은 평가해도 에너지 소비에 따른 영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 시설의 존재가 관할지역 에너지 수급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에는 관심이 없다. 지역의 에너지 수요과 공급에 관한 책임과 권한을 지방정부에 부여할 필요가 있다. 인근 도시보다 에너지 요금이 비싼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장은 여간해선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에너지 수급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조정이 필요하고, 중앙과 지역의 역할분담 체계도 마련되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와 보조를 맞춰 임무를 수행할 지역 에너지 회사와 전문가도 있어야 한다. 에너지 수급에 관한 제도도 대대적으로 정비돼야 하고 새로운 에너지 요금체계도 마련돼야 한다.

도입 초기에는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 전체의 에너지 소비는 크게 줄고 에너지 요금도 평준화될 것이다. 중앙과 지역의 역할분담을 통해 사소한 문제로 국가 에너지 수급체계 전체가 혼란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여 에너지 안보에도 기여할 수 있다.

대지진에 따른 원자력발전 중단사태의 충격을 빠른 시간 내에 극복한 일본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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