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원전 가동중단 없던 때도 전력난
전력 예비율 감축이 주요 원인

최근 원자력발전이 전력난의 주범으로 내몰리고 있다. 전력이 아쉬운 시기에 원전 납품비리로 인하여 원전가동이 중단되었으니 원자력발전소가 못마땅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따져보지 않고 모든 책임을 물어 원자력에 괘씸죄를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서 그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전력난의 원인은 전력망의 전력 공급능력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전적으로 원전에 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 않다. 원전가동이 중단되었으니 전력공급능력이 수요에 미치지 못한 것이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다. 다 잊어버린 기억을 더듬어 보자. 원전 가동중단이 전혀 없었던 작년과 재작년에도 전력난이 있었다.

물론 원전의 가동중단이 어려움을 가중시킨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망(Network)’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전력망을 설계할 때 이와 같이 발전소의 고장이나 사고로 인해서 가동중단이 발생할 경우 전력을 생산할 수 있도록 예비전력을 확충했어야 했는데 예비전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다음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력 예비율은 2003년 이후 계속 감소하여 2012년에는 5%대로 감소하고 있다.<그래프1 참조>

공급력 부족 그리고 전력 예비율의 무리한 감축이 주연이고 원자력 가동중단은 조연이다. 그런데 주연 대신 조연을 때리고 있다.

둘째, 지난 10년간 전력수요를 과소예측한 것이 전력 공급력의 저하를 불러온 것이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단일 전력회사인 한국전력공사가 여러 개의 발전회사로 분사를 한 이후, 지금까지 5차례 수립되었다.

1980년대 이전에는 장기전원개발계획 그리고 1990년대에는 장기전력수급계획으로 불리웠다. 이것이 전력수급계획과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2000년대 이전까지는 한국전력공사(KEPCO)의 투자계획 성격이었으나 경쟁체제에서는 투자의무가 없어짐에 따라 정부 차원의 수급전략으로 성격이 바뀐 것이다.

전기는 대규모 저장이 거의 불가능한 에너지이기 때문에 소비과 생산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에너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양을 미리 예측해서 발전소를 건설해 놓지 않으면 필요할 때 전기를 생산할 수 없다. 따라서 전력수급계획을 통해서 미래수요를 예측하고 이에 맞추어 공급능력을 확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전력수요의 예측을 항상 적게 하였다. 한전이 사내계획으로 전력수급계획을 수립하던 과거에는 과대예측과 과소예측이 번갈아 가는 식으로 수요예측이 되었는데,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체제에 들어서 지난 10년간 5차례 계획이 모두 전력수요를 과소예측 하였다. 당연히 공급능력을 충분히 늘리지 못했다.

다음 표에 제시되어 있는 것은 전력수급계획이 수립되었던 짝수년도의 전력수급계획상의 전력수요 (MWe)를 기술한 것이다. 계획을 수립한 해의 수치는 실제치이고 그 다음부터는 예측치이다. 1차 계획의 2004년도 예측치와 2차 계획의 2004년도 실제치를 비교하면 2.1% 과소예측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표1 참조>

또 2차 계획의 2006년도 예측치와 3차 계획의 2006년도 실제치를 비교하면 무려 8.0%나 과소예측을 하고 있다. 이렇게 3차와 4차 계획에서도 각각 2.3%와 1.4%를 과소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과소예측의 결과 공급력을 확충하지 못한 것이다.

셋째, 전력수요를 과소예측함으로써 원전건설이 억제되었다. 전력수요를 과소예측하면, 몇년이 지나서 공급이 부족해지면 빨리 전력공급을 늘려야 한다. 그렇게 되면 원자력발전소와 같이 건설기간이 긴 발전원이 아니라 LNG 복합발전소와 같이 건설기간이 짧은 발전원을 중심으로 공급능력의 확충이 이루어진다.

반대로 전력수요를 과대예측하면 원전이나 석탄발전과 같은 기저부하를 담당하는 발전소가 늘어난다. 과소예측을 반복하면 국가적으로 에너지믹스(Energy Mix)가 변화하게 되고 높아진 LNG의 비중은 다시 전력가격을 높이게 된다.

전력수요의 과소예측을 통해서 원전의 건설을 억제하려는 음모론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원전건설을 억제하기 위한 시나리오로 과소예측을 했다는 주장이다. 음모론이 있었건 없었건 결과적으로 지난 10년간 원전 건설은 최소한으로 억제되었음은 수치로 확인된다.

넷째, 이번 전력난의 원인으로 원전비중이 높았던 것을 문제시하기도 한다. 어떤 전원의 비중이 높았던 것은 그것이 발전원으로서의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력생산 단가가 싸고 이산화탄소배출이 없고 분단국인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연료의 장기비축이 용이하기 때문에 원전이 선택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원전비중이 높았었고 그것이 정지하게 됨에 따라서 전력난이 왔으니 원전비중을 낮추자는 얘기는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 가장 우수한 선수를 내보냈는데 경기에서 졌기 때문에 다음에는 선수를 교체해서 내보내자는 것과 같다. 전력수요를 과소예측함으로써 원전건설을 억제시켜놓고 또 전력난을 빌미로 원전비중을 논하는 저의가 궁금하다.

차제에 전력생산에서 원전의 비중을 낮추어야 한다거나 탈원전 운운하는 일각의 주장은 에너지자원이 거의 없는 우리 현실에 맞지 않은 무책임한 발상이다. 전력수급계획을 공급에서 수요관리로 새삼스레 전환한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왜냐하면 이미 10년 전부터 수요관리 위주의 정책으로 전환한 결과가 지금의 전력부족 사태로 이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수요관리를 통하여 전력수요를 줄일 수 있다는 자신감, 무모하게 예비율을 낮춘 결과 현재의 전력공급능력부족 사태가 온 것이다.

다섯째, 원전의 가동중단에 따른 피해와 그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도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원전 납품비리가 불거지자 정부는 전격적으로 원전가동을 중단시켰다. 그런데 그처럼 과격한 조치가 필요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회의적인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기술적으로 볼 때 잘못된 부품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는 부품인지 확인하고 이로 인하여 원전 안전성의 리스크가 얼마나 큰지 분석을 했어야 했다. 리스크 증가가 미미하면 운전을 계속하는 것이고 리스크 증가가 크다면 조심해서 운전을 하고 더 커지면 원전을 정지해야 하는데 너무 조치가 빨랐다.

그런데 그렇게 원전을 정지시키고 LNG로 전환한데 따르는 손해액인 9600억원을 다시 한수원에 물리는 것도 이상하다. 한수원이 기술적으로 원전가동을 중단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명령에 의해서 가동중단을 시킨 것인데 규정에도 없이 그 책임을 한수원에 물리고 있는 것이다.

여섯째, 원전의 납품비리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등 선진국도 경험했고 경험하고 있는 문제이다. 이것은 조직이 커지면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개인비리이다. 조직비리가 아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정부와 여론의 태도는 이를 ‘원전 마피아’라는 이름을 붙여 조직비리화 하였다. 또한 언론에서는 신나게 떠들었다.

그 결과 해외에서 우리나라 원자력산업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었다. 최근 국제기구에 다녀왔지만 재작년과 올해의 느낌은 너무나 나르다. 요르단에 연구로를 수출하고 UAE에 원전을 수출한 원전선진국이 아니라 원전비리로 얼룩진 나라가 되어버렸다. 그 결과 원전의 수출길은 점점 더 험난해지는 것 같다. 물론 이 덕분에 일본은 반대급부를 얻는 듯 하기도 하다.

일곱째, 국민이 원전의 안전성을 향상시키기를 원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 원자력의 발전단가는 킬로와트시(kWh) 당 39원이다. 이는 석탄발전 66원, LNG 발전 210원에 비해 현저히 저렴하다. 더 높은 수준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은 인력과 기술에 대한 투자가 없이는 달성되지 않는다.

국민이 원전의 안전성을 원한다면 킬로와트시(kWh) 당 10원 정도를 더 투자하면 될 것이다. 그래도 다른 발전원으로 전환한 것보다 저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자력에 투자를 아끼고 발전원을 전환한다는 발상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

여덟째, 최근 원전과 관련한 여론의 악화를 들어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를 늦추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것은 원자력산업을 또 한번 죽이는 것이다. 원전 소내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용량이 한계에 달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확실한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멀쩡한 발전소를 돌리지 못하고 세워두는 사태가 발생하게 될 수 있다.

고리1호기 계속운전의 경우에도 계속운전 여부에 대한 법령개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안전성 확인이 진행되는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서 한동안 원전을 정지시킨 사례가 있다.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대책은 이보다 더 시급하다. 또 납품비리와도 관련성이 없다. 따라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는 시급히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전력난의 주연은 전력수요를 과소예측하고 전력 예비율을 줄인 것이고 원전의 가동중단은 조연이었다고 본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전력수요를 과소예측한 것이 결과적으로 원전건설을 억제하였다고 판단한다. 또 원전의 가동중단은 기술적으로 필요했다기 보다는 여론과 정치사회적 영향을 고려한 결과였다고 판단한다.

그 책임을 한수원에 물리는 것도 힘으로 누르기보다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원자력발전이 우리나라 현실에서 확실히 장점이 많은 발전원이라고 본다. 국민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해 우려한다면 인적, 기술적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본다.

에너지정책을 수립할 때 개인비리를 섞어서 고려하는 것은 납득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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