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수 (사)전자·정보인협회 회장

우리 인류와 130년이 넘는 세월을 줄곧 같이 해온 백열전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내년부터 국내시장에서 백열등의 생산 및 수입, 판매가 전면 중단되게 되는 것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EU·호주·중국 등 외국에서도 순차적으로 수입 및 판매금지가 진행 중이다.

이것은 벌써 지난 2007년 G8 정상회담에서 퇴출권고가 결의되었을 때부터 이미 예고되어 온 수순이다.

백열등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Prometheus)가 하늘의 불을 훔쳐 인류에게 준 이후 ‘인류가 발견한 두 번째 불’이며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시대를 뛰어넘은, 또한 밤을 낮으로 바꿔놓은 위대한 발명품으로 그동안 각광받아 왔다. 따뜻한 불빛으로 많은 사람들이 선호했던 백열전구가 어느날 갑자기 미운오리새끼로 전락한 것은 최근에 등장한 고효율 조명기기의 등장과 함께 백열등의 결정적인 약점인 낮은 전력 효율이 에너지 낭비의 주범으로 낙인찍혔기 때문이다. 백열등은 전기에너지의 95%를 열로 낭비하는 대표적 저효율 조명기기로 ‘에너지를 먹는 하마’로 비유된다.

이를 안정기내장형램프 혹은 발광다이오드(LED)램프로 대체하면 연간유지비용을 각각 66%와 82%씩 절감할 수 있다. 하지만 효율을 떠나 백열등은 오랫동안 인류와 더불어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긴 역사를 같이 해왔기 때문에 백열등의 퇴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움과 추억의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백열전구는 1879년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847~1931)에 의해 최초로 발명됐다. 1880년에는 대나무가 필라멘트 재료에 쓰일 수 있음을 발견하고 동양에까지 사람을 보내 각지의 대나무를 채집했다. 그 후 수년간은 대를 탄화(炭化)한 필라멘트가 쓰여졌다.

이후 1910년 미국의 물리학자 쿨리지(W.D.Coolidge: 1873~1975)가 텅스텐(tungsten)을 가는 선으로 만드는데 성공해 백열전구 대량생산의 발단이 되었다.

미국의 물리학자 랭뮤어(I.Langmuir: 1881~1957)는 1913년 질소가스를 봉입(封入)하여 증발을 억제하는데 성공했다. 그 후 아르곤가스가 널리 쓰이게 되었다.

일반 조명용 이외에 용도에 따라 많은 특수 전구가 있다. 유리구를 담청색으로 해서 자연광에 가까운 색을 내게끔 한 주광(晝光)전구가 있고, 전광(全光)전구는 유리구를 유백색으로 눈부심을 없앤 것이며 외구(外球)없이 사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에디슨의 백열전구가 생겨난 지 8년 후인 1887년 서울 경복궁 안에 있는 건청궁에서 백열전구가 최초로 점등하게 된다.

이후 19세기 말경 민간에서도 백열전구가 사용되기 시작했고 1910년 종로에 가로등이 설치되면서 거리에서도 밤이 낮으로 극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 후 임전구제작소 등 순수 국내제조업체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6·25사변 이후 본격적으로 상용화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130년이 넘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던 백열등이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눈에 띄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급격히 상승세를 탄 발광다이오드(LED)램프 등 다양한 에너지절약형 조명기기들의 등장으로 백열등은 갑자기 빛을 잃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고효율에너지와 전력절약 및 효율성이 온 세계의 뜨거운 문제로 부각되면서 지난 2007년 G8 정상회담에서 퇴출권고가 만장일치로 결의되면서 결국 퇴장의 급물살을 타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8년 발표한 제4차 에너지이용합리화 기본계획에서 천명한 백열전구 퇴출계획이 확정되었다. 주요 국가들이 늦어도 2016년까지는 전부 퇴출시킬 계획에 있으며 생산, 수입, 판매가 전면 금지되면서 앞으로 백열등은 조명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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