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길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

[에너지신문] 국가발전의 필수요건으로 인식돼 왔던 해외자원개발정책이 이제는 어느 정도의 규모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로 이어지고 있다.

자원개발 과정에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탐사 성공률을 더욱 높이기 위해 기업 규모를 대형화 하며 적극적으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제 자원개발 전문가들의 내부 논리로만 자리매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석유공사, 가스공사 등의 차입금을 갚기 위해 연간 예산을 더 책정하고, 복지예산 등 타 분야의 예산을 줄일 수 있는 시기가 지난 것이다.

우리는 현 시점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해외자원개발 논리와 전략을 더욱더 가다듬는 기회로 삼는 것이 현명하다.

우선, 에너지 공기업을 중심으로 오일메이저와 글로벌 에너지기업들을 모방하고 따라가는 방식으로 해외자원개발을 수행해 온 지금까지의 방식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광구와 자원영토 확보를 위해 가속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오일메이저와 글로벌 에너지기업에 비해 그들을 모방하면서 우리가 추구한 결과는 점진적이며 선형적인 성장이었다.

아무리 막대한 돈을 투자하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매장량과 일산량, 역량의 차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제 우리는 자원개발 가치사슬 중에서 우리나라가 비교우위에 설 수 있는 고리들에 더욱 과감하게 집중해야 한다.

자원의 종류에 따른 탐사-생산-수송-정제-제품에 이르는 가치사슬을 종적·횡적으로 더욱 잘게 분해해 핵심기술과 핵심프로세스에 대한 엄격한 기술기준 및 전략적 평가를 토대로 자체개발과 해외조달 대상을 좀 더 정교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타 산업분야의 앞선 노하우를 과감하게 도입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강점을 보이는 반도체, 자동차, 전자, 철강, 조선 등 주요산업에서는 기술개발로드맵과 기술전략이 이미 정교하게 짜여져 있다. 반도체 등 선도산업 분야는 개방형 혁신을 넘어서 혁신의 파급효과와 소비자 및 국민의 수용성까지 심도 있게 고민하는 사회적 혁신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자원개발 분야는 물량 중심의 투입 의존적 성장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 자원개발분야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인력은 연구역량을 겸비한 숙련된 계획가와 평가가 일 수 있다. 자원개발분야에서 500억원 이상의 대형 연구사업을 기획해 국가 R&D 예비타당성 조사라는 혹독한 프리즘을 통과해 본 스타급 연구책임자가 몇 명이나 있을까.

신재생에너지, 환경, 해양과학기술 등 연관 분야에서는 이들 대형사업이 활발히 기획되어 혹독한 검증과정을 거치면서 암묵적 지식과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다. 이 과정 자체가 전문가그룹과 국민 사이의 깊은 의사소통과 합의 과정이기도 하다.

대규모 장비·시설이 필수적인 자원개발분야의 특성을 활용해 대형연구개발사업의 기획과 협력연구 도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비전통 석유·가스 부분 등 새롭게 기술개발이 일어나고 있는 분야의 경우 R&D에 대한 집중 지원 시 어떤 효과가 발생할 수 있는지도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현재 주요 에너지 공기업들은 정부의 부채감축 가이드라인에 맞추기 위해 해외자원개발 핵심 사업들에 대해 매각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간이 지나고 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들 인수자산 및 매각대상 자산에 대한 평가역량을 획기적으로 제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유망성과 숨겨진 가치도 볼 줄 아는 자산평가 및 기술가치평가 전문가들을 확보ㆍ양성해야 한다. E&P 자산에 대한 평가능력도 중요하고, 기업의 지식자산과 조직자산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하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체계적으로 진행된 후에라야 탐사 실패, 인수합병 실패 등에 대한 실패용인 시스템과 실패를 통해 배우는 학습체계 등을 설득력 있게 정부와 국민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에너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