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곤 LG경제연구원 사업전략부문 선임연구원

한국, 민간 주도 ESS 프로젝트 전무
수직계열화 보다 파트너십 강화 필요

[에너지신문] 매년 전력 수급의 불균형 문제가 심화되어 가는 가운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최근 들어 에너지저장장치(Energy Storage System: ESS)가 각광을 받고 있다.

늘어나는 전력 수요 대비 발전소 투자에 드는 막대한 비용과 건설 소요 시간을 고려해 볼 때 ESS는 전력 수요 평준화, 전력 계통 안정 운영, 능동적 관리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

아직 기업의 수익성으로 연결되고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ESS시장의 수요, 공급, 정책 모멘텀으로 미루어 볼 때 만년 유망주였던 ESS 시장 개화가 빨라지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ESS 시장 개화 촉진의 모멘텀

① 신재생에너지 Re-bound와 민간 주도의 ESS 프로젝트 확대
수요 측면에서 태양광 기업을 중심으로 주춤했던 신재생에너지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미 태양광 모듈 업계 재편이 이루어진 상황으로 기업들은 발전용 애플리케이션에 국한하지 않고 소비용 애플리케이션으로도 사업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균일한 발전량을 보장할 수 없는 신재생에너지의 태생적 특성상 전력 계통의 품질 안정화와 신뢰성 확보를 위해서 ESS 설치가 필수적으로 뒷받침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송배전망이 노후화되거나 전력망 자체가 부족한 나라에서는 ESS 채용 니즈가 더 큰 상황이다.

민간 주도의 ESS 프로젝트도 확대되고 있다. 히타치는 ESCO(Energy Service Company) 사업을 지난 1990년대 말부터 전개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시장을 선도적으로 개척해 나가고 있다.

과거에는 실제 초기 투자 비용 부담자와 수혜자가 불명확했던 시장으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비용 부담자와 수혜자가 분명해지면서 ESS를 기반으로 한 민간 주도의 프로젝트가 확대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② 기업 참여 확대를 통한 기술 발전과 실질적 가치를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 등장
공급 측면에서 기업들의 활발한 참여로 ESS의 구성 요소인 저장장치, PCS(Power Conditioning System), EMS(Energy Management System)의 기술 발전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저장장치의 경우 소비용 ESS 시장을 중심으로 기업들이 배터리 저장 방식에 대한 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어 성능이나 가격 측면에서 개선폭이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PCS와 EMS는 시스템 운영 경험이 풍부한 글로벌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각국 로컬 기업들의 진출로 기술 안정화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실질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도 등장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과 전기차 충전기 등 제품 번들링을 통해 Cost 부담을 완화하거나 하나의 ESS 설치로 다양한 용도에 사용 가능한 다용도 ESS 비즈니스 모델 등이 선진 시장을 중심으로 등장하고 있다.

③ 각국 정부의 ESS 보급을 위한 직간접적 정책 지원 확대
해외 각국 정부는 실증 과정을 통해 효과가 입증된 ESS를 중심으로 보급 확대에 적극적이다.

미국의 경우 ESS를 통한 수요 관리가 국가 에너지 계획의 핵심 사업으로 최근 미연방에너지위원회(FERC)는 ESS의 보급 확대를 지연시키는 제도를 정비하고, 투자자의 안정된 수익이 보장되는 시장 설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저지 등 주정부들도 ESS 보급 의무화, 보조금 인센티브 등 다양한 시장 확대 정책을 내놓고 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많은 국가들이 소비용 ESS의 인증 도입 본격화 등 사용자 환경 조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가정, 상용 빌딩, 공장 등지에서 전기 사용 요금 절감, 비상시 정전 대응 등 ESS 사용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미국에서는 UL, 일본에서는 JET, 독일에서는 VDE 인증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각국 기준에 맞게 고안된 평가 방법에 따라 ESS의 안정성 및 신뢰성 검증 평가를 위해 저장장치, PCS, 계통연계시스템, 소프트웨어 등 전체 시스템 평가를 수행하고 있다.

인증 도입의 본격화는 소비용 ESS가 실증 중심의 시범 보급 사업 단계에서 벗어나 실제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공급 중심에서 수요 관리 중심으로의 에너지 정책 변화가 탄력을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ESS 시장에서는 파트너십이 필수

최근 3~4년 ESS 프로젝트 수가 급증(그림1)하며 빠른 시장 개화가 예상되는 글로벌 ESS 시장과 달리, 국내 ESS 시장은 ICT 기술과 리튬이온전지를 기반으로 ESS 강국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실제 사업 추진은 활발하지 않은 상황이다.

▲ <그림1> ESS 프로젝트 증감 추이.

국내 ESS 시장은 투자비 회수 부담이 적고 효과성 입증과 비용 부담 주체가 명확한 주파수 조정용 ESS를 중심으로 시장을 형성 중에 있으나 아직 정부 주도의 초기 시장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민간 주도의 ESS 프로젝트는 거의 전무한 상황으로 정부에서는 에너지 소비 규모가 큰 민간 기업들에게 ESS 설치를 독려하고 있지만 권고 사항에 불과한 실정이다. 국내 기업들도 ESS 시장에 관심은 있지만 구체적인 사업화 수준으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다.

ESS 전체 시장이 2020년 수십조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지만 ESS 시장은 이질적이고 다양한 세분 시장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또한 기업들에게 요구되는 세분 시장 별 사업 특성과 필요 역량도 다르기 때문에 기업들은 사업 전개에 애를 먹고 있는 것이다.

발전, 송배전 영역은 유틸리티 기업 주도의 사업 모델이 확립된 반면 소비 영역은 아직까지 사업 모델이 유동적인 단계로 상대적으로 사업 기회가 많은 상황이다.

하지만 ESS 시장은 단독으로 사업을 진행하기에는 아직 버거운 시장으로 역량 보완 및 확보를 위해서는 파트너십이 필수적이다.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들이 ESS의 가치사슬 영역을 수직계열화 하기보다는 개별 기업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역량을 바탕으로 파트너십을 통해 시장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는 점을 국내 기업들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ESS를 적극적으로 육성하려 하고 있다. 올해 4월 공급 위주의 전력 시장에 수요관리 시장을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발전소 위주의 전력 공급 정책에 한계가 이른 국내 전력 시장에서 절약된 전력 소비량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에너지 시장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새롭게 형성되는 시장에서 기업들이 빠른 사업 경험과 역량을 쌓을 수 있도록 전기 요금 체계 개편 등 지원책과 발전사업자 중심의 규제 완화 및 다양한 제도적 보완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기업들의 시장 개척 노력과 함께 정부 지원이 잘 어울어진다면 ESS를 바탕으로 한 국내 에너지 신시장 확대는 물론 국내 ESS 사업의 글로벌 ESS 사업으로의 빠른 확장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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