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신문] 학여불급 유급실지(學如不及 猶恐失之)라는 공자의 말이 있다. 공부는 도저히 따르지 못할 것처럼 하고 오히려 잃을까봐 두려워해야 한다는 의미로 섣부른 성취를 경계하라는 말로도 통용된다.

하지만 최근 알뜰주유소 공급권 입찰을 보면 정부가 자신들의 성취에 너무 일찍 도취된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지난 7일 농협과 석유공사는 3차연도 알뜰주유소 1부시장 공급권을 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에 최종 낙찰했다고 밝혔다. 첫해 정유사의 외면으로 3번 유찰된 것과 달리 치열한 경쟁이 이뤄져 정부는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른 축포는 결국 독으로 작용했다. SK에너지는 현대오일뱅크의 가격을 맞출수 없다며 가격 조정을 요구하며 협상을 지연시켰다. 석유공사와 농협은 SK에너지를 제재하기는커녕 요구를 수용했다. 석유공사 측은 “조정가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고 밝혀 알뜰주유소 사업자들의 공분을 자아냈다.

알뜰주유소 정책은 경쟁촉진을 통해 정유사의 독과점적 구조를 개선함으로써 유가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도입됐다. 당연히 입찰가는 낮을수록 소비자에게 유리하며, 정유사간 경쟁촉진효과도 크다.

실제 2부시장에서는 삼성토탈의 공급권확보가 유력했지만 현대오일뱅크가 삼성토탈에 필적하는 낮은 입찰가를 제시해 막판까지 경쟁이 치열했고, 이같은 경쟁효과로 1부 시장 입찰가도 대폭 하락했다.

게다가 최근 시황 불황으로 공급권 경쟁에 뛰어든 만큼 정유사보다 정부의 협상력이 우위에 있었음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모든 유리한 상황을 갖추고도 이를 활용치 않았다. 오히려 선입찰 후조정이라는 선례를 남겨 차후 협상에 정유사의 힘을 실어줄 가능성만 높였다.

이같은 오판은 아이러니하게 ‘성공한 정책’이라는 평가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알뜰주유소는 농협 등 공적 주유소를 빼면 500개가 채 되지 않는 시장의 약자다. 자생력 향상을 위한 관심과 지원도 여전히 필요하다. 공급권 경쟁이 치열하다고 해서 알뜰주유소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조금의 성과에 ‘이만하면 됐다’는 안이함을 갖게 되면 갓 싹을 틔운 씨앗은 열매를 맺기 전에 말라죽는다. 섣부른 만족이 알뜰주유소를 흔들지 않도록 정부가 초심을 되찾을 때다.

저작권자 © 에너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