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효선 한국가스공사 책임연구원.
공짜를 좋아하면, 양재물도 마신다는 말이 있다.

양재물이라면 극약으로 알고 있는데, 그 양재물로 수산물을 부풀려 100억대를 챙겼다는 뉴스를 보고 화가 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길래 양재물로 자신의 배를 채울 생각을 했는지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이것뿐인가? 동경전력이 쓰나미 이후 보여준 실망스러운 대응도 전쟁을 일으킨 전범에서나 볼 수 있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식품안전과 방사능에 대한 안전문제는 우리의 건강에 파괴력이 크고, 그 영향이 장기에 걸쳐 지속될 뿐만 아니라, 아무리 조심을 한다하더라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딱히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더구나 방사능에 대한 지식이 터무니 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어디까지를 안전하다고 할 것이며, 어디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규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서지 않는다.

양재물을 사용한 업자도 세척하면 괜찮은 줄 알았다고 변명하듯이, 동경전력도 더 큰 2차 폭발을 고려하여 사후 조치가 지지부진하였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이러한 변명은 우리가 너무 단기적인 이익에 급급한 나머지, 뻔히 아는 재앙을 ‘만약의 경우’로 폄하하고, 그 확률을 매우 낮게 잡은 데서 기인하였다고 본다. 즉, 그 ‘만약의 경우’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아무리 높더라도 ‘만약의 경우’의 확률이 낮으면, 전체 사회적 비용은 현재 우리가 누리는 경제적 편익을 상회할 수 없다는 식의 사고에서 출발한 것이다. 따라서, 이를 사회가 묵인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어느 누구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 우리는 경제성장에 대한 압박감 속에서 ‘에너지안보’라는 숙명적 과제를, 마치 선행학습을 하는 수험생들처럼 빡빡하게 진행해 왔다. ‘에너지안보’를 위하여 치루어야 하는 비용이 어마어마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늘 물가안정을 위하여 ‘에너지가격’이 당연히 싸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이러한 정서 속에서 에너지가격은 가격대로 왜곡된 상태에서 고질병을 앓고 있으며, 원자력에 대한 의존도는 안전성의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값싸고 안정적 공급에 가려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에너지안보’와 ‘안정적 공급’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하여 지불해야 하는 비용에 대하여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선, ‘안정적 공급’에 희생된 ‘안전성’에 대하여 얘기해 보자. 안정성(stability)과 안전성(safety)은 다르다.

물론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이 거론될 때마다 가장 쟁점이 되었던 것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방법론에 대하여 정밀하게 검토하고 토론할 기회를 갖는 데 충분한 시간을 갖기 못했으며, 공청회를 통해서야 정부가 사회적 비용과 관련하여 퀀텀 립(Quantum Leap: 원자에 에너지를 가하면 핵 주위를 도는 전자가 낮은 궤도에서 갑자기 높은 궤도로 점프해 에너지 준위가 올라가는 현상)에 가까운 논리를 국민에게 이해시키는 데 얼마나 애를 쓰는 지 목격해 왔다. ‘물가부담’을 안고 국민을 설득을 하는 정부나 눈을 질끔 감고 설득을 당하는 국민이나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에너지가격이 ‘가격’이 아닌 ‘요금’이라는 국내 실정을 이해한다면, 더 이상 에너지를 다른 시장재화랑 동일시하는 견해는 바뀌어야 하며, 에너지가격에 사회적 비용을 포함한 제반 비용이 요금체계에 ‘제 때’,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더 이상 ‘물가안정’을 인질삼아 에너지가격을 지나친 규제로 왜곡시켜, 경제성장의 건전성을 스스로 위협하는 우는 범하지 않아야 한다.

다음, ‘에너지안보’라는 또 다른 토끼에 대하여 논의해 보자. 에너지안보를 위하여 설정해 놓은 자주개발률 목표치는 원활한 재원조달 없이 달성할 수 없다. 에너지 공기업들이 미수금에 묶여 투자여력이 제한됨에도 불구하고, 자원개발의 최전선에서 총알 없이 서있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 또한 에너지가격 정상화라는 숙제가 선결되어야 가능하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어찌 보면, 일본의 불행이 우리에게는 상생의 기회일 수 있다. 요즘 결혼하는 커플들은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한다.

일본 동경부근에 사는 수유부의 모유에서 방사능 물질이 나왔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사회적 비용에는 외부효과를 회피하고자 소요되는 비용도 있지만, 불안을 감내하는 비용도 포함되어 있다. 현재 우리가 공유하는 불안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것이다.

대기오염 물질에 대한 문제보다 온실가스 물질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온실가스가 누적되어 부정적 효과가 장기적으로 지속된다는 데에 있다. 탄소세도 그렇고 원전에 대한 사회적 비용도 그렇고 에너지가격 정상화를 위하여 악역이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이슈를 던져준 기회임에는 틀림이 없다.
정말 원하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제 값을 치루어야 즐길 수 있다.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김효선 한국가스공사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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