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E 도입, 차량ㆍ연료 시장 들썩…경유 몰락 기폭제 되나

[에너지신문] EU가 경유차 실도로조건 배출허용기준을 현행 인증모드 허용기준의 2.1배로 최종 확정했다. 환경부도 한-EU FTA에 의거해 국내 경유차 실도로조건 기준을 EU와 동등하게 설정, 2017년 9월부터 이를 적용한다. 기준 미 충족식 국내는 물론 유럽에서도 차량을 판매할 수 없다.

대폭 강화된 기준에 자동차 제작사는 물론 관련 연료 시장까지 들썩이고 있다.

▲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파문 후 경유차 배출가스 규제 강화 등 후속조치가 속속 이뤄지고 있다.

■ 폭스바겐 사태에 RDE 도입 지연 ‘없던 일로’
 
경유차에 보다 강력한 실도로조건 배출허용기준(RDE-LDV:Real Driving Emission-Light Duty Vehicle)이 적용된 배경에는 시험실과 실제 도로 주행시 유해물질 배출량 차이가 자리한다.

지난해 ICCT(국제청정교통위원회)가 조사 결과 유로-6 인증기준을 통과한 최신 경유차 15대도 실도로 주행시 인증기준 80mg보다 7배 많은 질소산화물을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환경과학원도 실험을 통해 유로 5 경유차가 실제 운전조건에서 NOx배출량이 실험실 조건 인증기분 보다 약 4.1배 높음을 확인했다.

국내외 실험결과 배출가스 인증치와 실도로 주행 시 배출량의 차이가 상당함이 드러나면서 이를 좁힐 수 있도록 차량 제작사에 대한 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최근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은 이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 발표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스위치를 통해 디젤차가 검사를 받을 때는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실제 도로에서 주행할 때는 이를 꺼지도록 해 기준치 40배의 NOx을 배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클린디젤’을 내세워 경유차 시장을 앞장서서 확대해 온 폭스바겐인 만큼, 이번 조작 사태는 단순히 일개 회사의 스캔들을 넘어 연료 자체에 대한 신뢰성을 무너뜨렸다. 경유차 배출가스 규제를 준비해 온 각국 정부 역시 행보에 가속도를 냈다.

사실 차량 제작사들은 강화된 규제를 충족하기 위한 기술이 선제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며 RDE의 도입 시기 지연을 요구해 왔다. 실제 현재 시판 중인 경유차 중 RDE 기준이 도입되면 유로6 기준 통과가 가능한 차량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면서 차량업계의 요구는 상당부분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폭스바겐 사태 이후 상황은 전복됐다. EU가 발 빠르게 실도로주행 인증기준을 확정 국내에서는 2017년 9월부터 본격 도입될 예정이다.

관련 업계는 이 도입 시기마저 앞당겨 질 수 있다고 예측한다. 환경부 관계자도 “관련 법령을 정비하고, 2017년 도입 이전 내년 시범사업을 벌일 예정”이라며 “폭스바겐 사태의 파급력이 상당하고, 현재 진행형인 만큼 제도 시행 시기가 다소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이 경우 제작사의 부담은 상당할 전망이다. 현재 거의 모든 제조사가 강화된 기준에 맞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NOx 배출 저감, 유해물질 감축을 위해서는 압축비 향상, 엔진 설계 고도화, 후처리 기술 향상 등에서 기술적 한계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립환경연구원의 조사 결과 실도로 주행시 휘발유, LPG차의 배출가스는 실내 인증치를 밑도는 반면 경유차는 모든 차종에서 실내 인증치의 2~4배를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개발에 비례한 차량 제작비 향상에 대한 고민도 크다. 지난 4월 열린 세미나에서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현재 기술적으로는 유로 7.0까지 대응할 수 있으나 경제성 차원에서 고민이 크다”며 “CO2 규제에 대응할 수는 있지만 소비자들에게는 비용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고연비, 낮은 차량 가격 등 경유차의 이점이 대부분 희석되는 셈이다.

최악의 경우 기준을 충족하는 차량이 아예 출시되지 않을 수 있고, 출시되더라도 경제성이 낮아 소비자 선택에서 외면 받을 가능성이 크다.


■ 경유차 추락, 정유사 수익성에도 악영향

차량 감소는 곧 경유 소비량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RDE도입에 수송용 연료시장까지 관심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국내 시장에서 경유차량은 급성장했다. 고유가 시기 고연비를 장점으로 주목받았고, 수입차로 인해 이미지도 개선된 결과다. 국토교통부가 집계한 9월말 현재 경유차 등록대수는 844만 1806대로 올들어 50만 3179대가 증가했다. 전체 등록차량의 40.66%, 올들어 증가한 차량의 78.02%가 경유차로 조사됐다.

차량 증가에 따라 연료 소비도 급증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수송용 석유제품 소비량은 총 1억 7437만 3000배럴이다. 이 중 경유는 8902만 2000배럴이 소비돼 전체의 51.05%를 차지했다. 현 추세라면 지난해 소비량을 뛰어넘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

연료공급사 즉 정유사의 입장에서 이같은 경유 전성시대의 도래는 반가운 일이었다. 휘발유나 LPG에 비해 세금이 낮아 제품마진이 높기 때문이다. 최근 역내 국가들의 시설 증설과 정부의 경쟁 중심 정책으로 인해 내수와 수출 양측에서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수송용 경유 시장은 정유업계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지난 몇 년간 디젤 하이브리드 버스, 클린디젤 택시 등의 대중교통 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GS칼텍스는 수입차 사업에도 뛰어 들었다. 100% 출자자회사인 GS엠비즈를 설립, 2012년 6월 폭스바겐코리아로부터 딜러권을 받고 사업을 시작했다.

국가기간 산업을 운용하는 대기업으로써는 적합하지 않다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수입차의 시장 확대와 경유차의 증가 추이를 고려할 때 신산업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폭스바겐 사태 직후인 10월 초 GS엠비즈는 폭스바겐코리아측에 딜러권 반납을 신청했다. 실적 타격은 물론, 폭스바겐 브랜드의 신뢰도 하락이 그룹 이미지 실추까지 이어질 것으로 우려되면서 사업을 접기로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RDE 도입은 경유차 시장의 급격한 위축과 이에 따른 연료 소비 감소로 인해 정유사의 수익성 악화에까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반면 친환경차, 즉 전기차와 수소차 등 첨단 차량과 LPG, CNG 등 가스차량은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직 대중성이 낮은 첨단차량에 비해 충전 인프라와 기술 확보가 충분한 LPG차량의 시장 확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세계 LPG차량 시장은 2000년대 이후 각국 정부의 지원 정책과 높은 경제성에 힘입어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단 국내 사용제한 규제로 인해 시장이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어 국내 관련 업계의 수익성은 크게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폭스바겐 사태가 수입차, 디젤차에 대한 이미지 하락은 있어도 실질적 소비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며 “반면 RDE는 실질적인 비용 상승과 연계돼 소비자 선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에서 디젤차량의 몰락과 친환경차의 대중화를 견인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에너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