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만들어 주세요’, 막상 만들면 ‘안써요’
기업, “이미 있어요… 덜 혁신적인것이지만”

한 중소기업이 가스레인지에 의한 화재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과열방지기’를 개발했음에도 관련업계와 관련기관의 비협조로 상품화에 애를 먹고 있다.

중소기업 ‘이엔테크놀로지’는 최근 조리용기의 표면에서 나오는 복사열을 감지해 화재가 발생하기 바로 직전에 자동으로 가스를 차단함으로써 화재를 막아주는 ‘세이프쿡’을 개발했다.

우리나라 모든 가정용가스레인지에 의무적으로 부착하게 돼 있는 ‘소화열전대(MPU)’에 연결한 밸브를 그 어떤 전력 소모없이 자동으로 닫히게 해 주는 제품으로 내년에 시행하기 위해 개정한 ‘가스레인지 과열방지장치 의무화(가스레인지 제조의 시설·기술·검사기준)’에 부합하는 핵심 부품이다.

▲  이엔테크놀로지의 ‘세이프쿡’ 크기 비교

지금 현재 국내 제조업체가 보유한 가스레인지 과열방지기 제조기술은 국내 최고의 가스레인지 제조업체 A사가 보유한 기술 하나밖에 없음에도 이 제품은 소비자에게 외면받는 상황이다. 이유는 비싼 부품제조단가로 이를 적용한 A사의 가스레인지는 고급형 외에는 쓰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A사의 그 과열방지기는 조리용기의 표면 온도를 직접 감지하는 방식이라 오래도록 조리해야 하는 조림, 찜, 수육 등의 음식이 채 완료되기 전에 꺼져 한국인의 음식문화에 맞지 않는다는 평가다.

뛰어난 ‘과열방지기’

그렇다면 이엔테크놀로지가 개발한 ‘세이프쿡’이 유일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세이프쿡은 작은 크기로 새끼손가락 정도 수준에 제조단가도 A사가 보유한 ‘과열방지기’의 1/20 수준이라 가스레인지 소비자가격에 끼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다. 또 작은 크기이니만큼 기존 가스레인지의 디자인과 큰 설계 변경 없이도 모든 방식의 모든 화구에 부착할 수 있고 올해 5월에 방재시험연구원에 의해 약 한 달간의 시험을 거쳐 모든 항목에서 ‘합격’ 시험성적서를 냈다.

음식조리시 화재가 발생하는 온도는 360℃(식용유)인데 270℃에서 소화가 되고 그 외 물기가 증발한 용기가열 때도 화재가 발생하기 전에 가스불을 차단해 준다. 지금까지 나온 ‘가스레인지 화재방지기’ 중 가장 뛰어난 제품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세이프쿡은 ‘과열방지기 의무화’를 시행해야 할 관계기관과 이를 장착해 보급해야할 가스레인지 제조사에게 외면 받고 있어 또 하나의 쓸 만한 기술이 사장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 ▲ 세이프쿡 개념도1. 점화플러그 2.버너 3.소화열전대 4.전자밸브유니트 4a.안전밸브 4b.전자석 4c.스프링 4d.금속핀 10.안전스위칭부

“신기술이라 안돼요”

가스안전공사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7년까지 가스연소기 과열사고 중 음식조리 중 가스레인지에 의한 과열사고가 81%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가스레인지에 음식물이나 빨래 등을 올려놓고 잠이 들거나 외출해 용기가 과열돼 화재가 발생하는 것이다. 또 대전 소방본부에 따르면 “주택화재의 40%가 가스레인지에 의한 화재”라는 발표가 났다. 이를 종합하면 ‘주택에서 발생하는 화재의 40%는 가스레이지에 의한 것이며 그 원인은 조리용기의 과열에 의한 것’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가스레인지 화재에 가스안전공사는 지난 2008년에 국내 주요 가스레인지 제조업체 관계자를 불러놓고 ‘과열방지 대책 간담회’를 진행한 후 과열방지장치를 장착할 기술을 독려했다.

당시 가스안전공사 측은 “모든 가정용 가스레인지에 전원 없이도 작동되는 과열방지장치를 개발하고 이를 의무적으로 부착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이엔테크놀로지는 약 2년에 걸쳐 가스안전공사가 원하는 방식의 과열방지기 개발에 성공했다.

그러나 막상 이를 들고 가스안전공사에 방문해 ‘업계가 원하는 방식의 과열방지기’라며 기능 설명을 했지만 “기존 기술이 아닌 신기술이라 인정할 방법이 없다”는 황당한 말을 들어야 했다.

가스안전공사 상위 기관인 지식경제부에도 들고 가 다시 기능설명을 했다. 지식경제부도 “제품은 좋지만 인증·채택 그 무엇도 해 줄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정부기관이 필요성을 느껴 제품을 만들어 달라고 해 놓고 막상 만들어 놓고 나니 관심을 두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 세이프쿡을 가스레인지에 장착한 모습

비상식적인 시험 후 ‘부적절’로 보고

관련기관의 외면을 받은 이엔테크놀로지 관계자는 개발한 세이프쿡을 들고 가스레인지 제조사에 직접 찾아가 협력관계를 맺자고 청했다.

해당 제조사는 그렇지 않아도 내년에 시행할 과열방지기 부착 의무화로 ‘T/F팀’까지 조직해 새로운 법에 대응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때마침 이에 맞는 부품을 가지고 온 것에 놀라워 하면서도 제품의 성능을 알아야 하기에 직접적인 시험을 요구했다. 그리고 지난 9월에 A사 기술개발팀에 의해 이엔테크놀로지의 세이프쿡에 대한 시험이 이뤄졌다.

모두 3가지에 대한 화재발생유무에 대한 시험이었다.

‘식용유를 프라이팬에 제한 시간없이 달구었을 때 300℃ 이내에 가스를 차단하는가.’

‘가열한 유리냄비의 물이 증발한 후 화재가 일어나기 전에 가스를 차단하는가.’

‘은행을 냄비에 담아 가열 때 제대로 익은 후 가스가 차단되는가.’

이 세 가지 시험에서 세이프쿡은 적정한 시기에 가스를 스스로 차단함으로서 레인지 불을 소화해 냈다.

그런데 기술개발팀은 예정돼 있지 않은 시험을 하나 더 하자고 했다. ‘묵은 기름이 잔뜩 묻은 냄비에 가열하는 시험’이다. 용기 표면온도 180℃가 되지 않아 불길이 치솟아 화재가 발생했다. 마지막 시험은 실패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 후 A사 기술개발팀은 상부에 ‘180℃ 이내에 화재가 발생해 상용화에 부적절’이 포함된 보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고 세이프쿡을 A사에서 쓰게 될 가능성이 낮아졌다.

그때의 그 시험에 대해 이엔테크놀로지 관계자는 “기름으로 뒤덮인 냄비에 대한 시험은 실제 조리 생활에서 쓰이지 않는 비정상적 시험법”이라며 “A사 기술개발팀은 처음부터 세이프쿡이 부적절한 제품이라는 것을 상부에 알리기 위해 과도하게 나쁜 조리 환경을 조성해 시험했던 것”이라며 분개했다.

즉 A사 기술개발팀이 자신들의 업무영역을 다른 회사가 침범한 것에 대해 응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난이다.

작은 기업 제품 활용엔 소극적

이렇듯 국민과 국가의 필요에 의해서 기술 개발을 유도했음에도 막상 개발이 완료되니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제품이 이엔테크놀로지 제품만이 아니다.

개발을 하고 나면 이를 인증할 법적·제도적 장치가 없다 하고, 큰 기업이 아닌 작은 기업의 기술이라고 해 상용화에 소극적 자세를 취하곤 한다.

지난 8월 29일 국회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나라당 손범규 의원은 “공무원이 기존 업체들과 유착해 친환경 등 신기술을 외면하고 있다”며 “지자체의 친환경 신기술 관련 구매지침을 마련하고 인센티브 등을 통해 구입을 장려해야 할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신기술 장려책에 문제가 많음을 지적한 것은 신기술 외면 현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저작권자 © 에너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