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보일러설비협회 박현관 상무

가스안전공사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전체에 보급된 가정용 가스보일러는 약 1200만대 가량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 가스보일러 제조사 전체의 연간 보일러 생산능력은 200만대 가량 되는 것으로 업계는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수치만 보더라도 가스보일러 단일 시장으로 세계 최대 규모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실제 연간 생산량은 100만대 수준으로 통용되니 ‘대한민국 가스보일러 생산능력 200만대’와 ‘연간 100만대 생산량’을 비교하면 실질적인 생산량은 50%가 되질 않아 과도한 생산능력 보유국이 되는 셈이다. 능력에 비해 실력발휘를 못하는 형국이다.

국내 가스보일러 제조사의 가격 낮추기 경쟁의 근본 원인은 ‘과도한 능력’에서 비롯됐다 볼 수 있다. 각 제조사는 생산능력을 조금이라도 더 발휘하고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과당경쟁을 하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나라 연간 100만대 보일러 시장은 외국계 제조사의 눈에 꽤 매력적이다. 1200만대 보급량만 보더라도 한국인만큼 난방시설에 전폭적으로 가스보일러를 이용하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보일러 없이 살 수 없는 문화적 배경의 이유다. 이를 풀어서 보면 외국계 보일러 제조사가 질 좋은 제품과 선진국 수준의 서비스를 무기로 우리나라에 보일러를 보급하겠다고 마음먹고 파고들면 상당한 시장 잠식이 가능하다는 풀이가 된다. 최근 몇 년간 중국산 보일러가 들어오는 것과 보일러의 본고장 유럽 제품이 우리나라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은 이러한 가정이 가능하기에 나온 말이다.

지금의 제품가격보다 더 저렴한 중국산이나 품질이 우수한 유럽산 보일러가 유입된다면 어떨까. 무방비 상태로 우리나라 시장을 고스란히 내주진 않을 것이다. 이미 몇 년 전 부터 우리나라 보일러 제조사는 포화상태의 내수시장에서 벗어나 수출형 사업으로 체질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 왔고 그 결과물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가정용콘덴싱가스보일러개발에관한 중기거점사업으로 효율 90%가 넘는 보일러를 개발했고, 그것을 또 뛰어넘기 위해 그린콘덴싱보일러개발사업이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의 보일러를 선진화하고자 기존의 KS규격을 EN규격과 맞춘 작업도 완료됐다. 그 외 각 기업이 펼치고 있는 보일러와 온수기 수출증대, 보일러와 신재생에너지와의 융합작업 시도 등도 빼 놓을 수 없는 체질 변화를 위한 노력이다.

문제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EN규격 부합화 작업이 완료되고 올해 그 적용을 하고 있음에도 보일러 시장의 변화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가스보일러업계는 치열한 내수시장의 과다경쟁과 포화된 시장을 극복하고자 수출산업화에 노력하고 있으나 세계 최대시장인 유럽시장과 중국시장은 비관세무역장벽, 특히 EN규격과 KS규격의 차이 때문에 국내 보일러산업의 수출산업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유럽에 보일러를 수출해야 진정으로 보일러 기술을 세계가 인정하는 것이기에 유럽시장은 반드시 넘어서야 할 과제였다. 유럽에 수출할 수 있는 보일러를 제조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보일러 업계와 정부는 KS규격을 EN규격과 부합화 작업을 진행했던 것이다. 다만 EN규격의 국내 적용시기, 국내 보일러 기술기준의 상이함에 따른 EN규격 적용의 어려움, 유럽과 국내의 환경과 난방문화의 차이에 따른 적용기술의 차이 등에 어려움이 있기에 EN규격에 맞춘 제품이 시장에 나오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보일러 제조기술을 더 끌어 올려야 유럽에서도 인정하는 제품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환경과 유럽의 환경이 다르니 유럽에 적합한 규격을 우리나라에 바로 적용할 경우의 문제점을 생각해 EN규격을 우리 실정에 어떻게 맞출 수 있을지를 더 연구해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럽규격을 적용하도록 강제하게 되면 기술력 부족과 가격경쟁력의 열세로 수출은 고사하고 내수시장을 유럽산 제품과 중국산 제품에 밀려 국내 기업은 조금씩 사라질지도 모른다. 규격이 개정됐으니 알아서 유럽형태의 보일러를 만들겠지하는 생각을 해선 안된다. 매뉴얼을 만들었으니 제조사가 이를 그대로 적용할 것이라 마음 놓을 것이 아니라 이를 어떻게 응용할지를 알려야 한다. 제품 경쟁력 향상과 EN규격에 대한 정확한 이해, EN규격을 우리 실정에 맞춰 적용할 수 있는 기술로 진화할 수 있도록 관·민·학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적정한 보일러단가의 유지도 중요한다. 국내 보일러사는 최근 몇 년간 과당경쟁으로 보일러가격이 도리어 떨어지는 상황이다. 특판 시장은 팔수록 손해를 보는 시장이기에 붕괴되기 일보직전이라는 소문까지 있다. 기업이 제대로 된 이익을 봐야 그것을 재투자해 기술 개발을 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더 좋은 보일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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