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정보인협회 나경수 부회장

전기제품이 그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데도 전기가 낭비되는 이른바 ‘대기전력(Standby Power)’은 전기를 빨아먹는 ‘전기 흡혈귀(power vampire)’에 비유된다.

지식경제부와 에너지관리공단이 대기전력 관리를 위해 에너지소비효율등급표시제도, 대기전력저감프로그램, 고효율에너지기자재인증제도 등 3가지의 효율관리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은 미흡한 부분이 많다.

TV나 오디오, 컴퓨터와 같은 전기제품은 전원을 꺼도 전기를 계속 소모한다. 대기전력이 새 나가는 것을 막으려면 아예 콘센트에서 플러그를 빼 전원을 차단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번거롭고 불편해 뜻대로 실천하지 못한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당 대기전력 소비량은 연간 가구당 전체 소비량(306kWh)의 약 11% 정도로 금액으로는 3만 5000원에 해당한다. 전체 1500만 가구로 그 범위를 확대하면 국가 전체적으로는 매년 5200억 원 이상이 낭비되는 셈이다.

여기에 에너지 낭비로 인한 사회적 비용까지 합치면 전기 낭비에 의한 손실은 더 심하다. 세계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대기전력 1W 소비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5유로(7000원 상당) 정도라고 한다.

이런 대기전력이 우리 생활 속에서 매초, 매분, 매시간 낭비되는 것이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가 집에서 쓰는 TV, 비디오, 오디오, PC 등 전자기기는 전원의 온·오프 버튼을 이용해 끄든, 리모컨 버튼을 이용해 끄든 약 3W의 대기전력을 소비한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플러그를 콘센트에서 뽑지 않는 한 전기는 계속 흐르고 있음을 뜻한다.

최근엔 작은 건물이든 큰 건물이든 각종 네트워크에 항시적으로 접속돼 있는 전자기기들이 늘어나면서 대기전력 발생 요인도 더욱 많아졌다. 여기엔 홈 네트워크화를 진행하는 가정집도 예외는 아니다. 셋톱박스 등 네트워크에 항상 연결된 디지털기기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새로운 대기전력(active standby)을 발생시키고 있다. 제품 동작 때 21W, 꺼지더라도 17W의 전력을 소모한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제품의 사용 의도 없이 껐을 때나 사용의도를 갖고 켜 놓았을 때나 항상 80% 수준의 전기가 흘러나간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앞으로 20년은 매년 1.3%씩 전력 증가요인이 발생하고,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오는 2020년경이면 가정에서 소비하는 전력 가운데 25%는 대기전력이 점유할 것이란 IEA의 전망도 나오고 있다.

IEA의 예측치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미 대기전력 낭비는 인류의 에너지 자원 축소와 사회적 비용 증가란 측면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

대기전력 절감은 반드시 풀어야할 숙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이미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대기전력 절감을 위한 다양한 제도와 프로젝트 등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기전력 관련제도로는 제조업체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초로 한 ‘에너지절약 마크제도’가 지난 1999년 4월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제도에 적용하는 품목은 PC, 모니터, 프린터 등 17개지만 앞으로는 더 확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또 ‘스탠드바이 코리아 2010(Standby Korea 2010)’이란 대기전력 절감 프로젝트도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와 프로젝트들이 그 목표대로 이뤄진다면 오는 2020년경이면 지금보다 대기전력의 수준이 70% 정도 줄어들 것으로 전문가들은 바라보고 있다.

문제는 실천이다. 대기전력 절감 로드맵은 만들어진지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를 모르는 기업이 적지 않다. 전기·전자 기기를 생산하는 기업들도 잘 모르는데 일반 가정은 말할 것도 없다. 말로는 대기전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여전히 남의 일이다.

우리가 지금 시행하는 대기전력 절감 제도와 프로젝트들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대기전력의 정의와 중요성을 일반대중과 기업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널리 알리는 일부터 시작해야한다. 기업과 정부도 절감 잠재량, 기기별 및 연도별 달성수준, 정부조달체계 개선, 대기전력 절감과 관련된 제조업체의 기술개발 촉진 등을 어서 빨리 수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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