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수급기본계획, 지나치게 정치화·이념화돼 있어
현행 전력수급계획 ‘무용론’ 제기...‘아웃룩’ 전환해야
“신규원전 우선 수급계획, 전력공급 안전성 해칠 것”
LNG, 6년만에 23%→9%...비합리적 계획 사라져야

[에너지신문] 전력·에너지 분야 전문가들이 현행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의 문제점에 대해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이들은 정치적 이념에 좌우되고, 일관성이 결여된 수급계획에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사)전력산업연구회는 ‘합리적인 전원구성을 위한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방향’을 주제로 한 정책세미나를 27일 롯데호텔서울에서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손양훈 인천대 교수가 ‘에너지 위기로 가고 있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전력수급기본계획의 현황, 문제점, 그리고 개선방향’에 대해 각각 발표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박주헌 동덕여대 교수가 좌장을 맡아 박종배 건국대 교수, 조성진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황태규 GS EPS 상무가 각자의 견해를 발표했다. 본지는 이날 전문가들의 발표 및 토론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음.
▲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음.

손양훈 인천대 교수

우리나라의 에너지 산업은 탈원전과 에너지 전환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누적된 적자와 부채로 전대미문의 재무적 위기에 처해 있다. 현재의 위기도 심각하지만 쉽게 나아질 수 없는 상황으로, 전력시장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자여력이 이제는 없어졌다.

국가 에너지 수급계획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이상에 치우쳐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고, 에너지 안보를 오히려 위협하는 상태다. 특히 수급계획이 재생에너지와 원전만 강조, 경직성 전원 일색으로 만들어져 유연성이 극도로 부족해 계통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전원믹스의 경직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LNG발전과 같은 유연성 자원의 비중이 유지돼야 한다. 그런데 전력수급계획도, 천연가스 계획도 이를 준비하지 않고 있다.

특히 금리는 신규 투자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할 사항이다. 고금리가 되면 연료비 비중이 낮고 설비비 비중이 높은 재생에너지와 원전은 불리해지고, 반대로 설비비 비중이 낮은 LNG 발전이 유리해진다. 투자의사 결정에서 금융시장의 여건이 변하고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지난 20여년간 10차례의 수급계획을 만들고 시행해 왔는데 에너지 안보와 경제성, 환경성이라는 3개 축이 그 중심이 돼 왔으며, 무수한 시행착오와 오류를 거쳤다. 수요관리를 강조하다 전력부족과 순환정전을 겪었으며, 후쿠시마 사고나 미세먼지가 나타날 때마다 전원 선택의 기준이 일렁거렸으나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반복됐다.

그러나 정부는 끊임없이 나타나는 쉽게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에 대처하지 못하고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가 계획대로 나오지 않아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으며, 이는 결국 전력수급계획의 무용(無用)함을 증명해 주고 있다.

선진 각국은 독립기관이나 주무부처가 주도하는 계획이 아니라 ‘아웃룩(Outlook)’을 발표하고 그 내용과 관련 자료를 공개,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국가가 일사불란하게 하나의 미래를 계획한다는 게 가능하지 않으며, 미래를 계획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수급계획 무용론’은 그래서 설득력을 갖는다. 개발경제 기간 동안 안정적인 전력공급에 기여한 수급계획이 이제는 그 시효를 다했다.

▲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 모습.
▲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 모습.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현재 수립 중인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계통 여건 및 사회적 수용성 등 현실적인 여건을 반영하기보다는 원전 등 특정 전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검토되고 있다.

향후 우리나라는 원전과 재생에너지 등 경직성 전원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지만 전력수요 변동성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 자원이 부족해 정전이 발생할 우려가 높다. 송전선로 건설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2024년경에는 동해권역 발전기 6GW가 정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신규 원전을 통해 용인 반도체 전력수요에 대응하는 방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특히 고준위폐기물을 처리할 영구 저장시설 관련 법안이 국회에 멈춰 있는 상황으로, 신규 원전 건설에 우선순위를 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향후 전력공급 안정성을 크게 해치는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설비계획 중심의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시나리오별 전력수요 아웃룩 체제로 전환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시장에서 자율적 확보가 어려운 자원은 현재와 같이 정부 목표를 반영, 확보하되 그 외 자원은 사업자가 자율적으로 판단 및 결정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할 것이다.

아울러 기존의 하향식 계획수립에서 벗어나 다른 에너지 관련 계획들과의 통합적 수립이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박종배 건국대 교수

전력수급계획의 지나친 정치화는 지난 정부 8차 수급계획의 ‘탈원전’, 9차 수급계획의 ‘탈석탄’으로 본격화됐다. 정치화된 수급계획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현실보다 지나치게 이상을 설정한 결과 비용이 극대화되는 것으로, 단적인 예가 지난해 글로벌 에너지 위기로 인한 에너지 비용의 급상승이다.

이번 11차 수급계획은 에너지 안보와 비용 최소화를 우선 고려하고, 장기적으로 탄소중립을 고민하는 균형 있는 전력수급계획으로 회귀해야 할 것이다.

사업자 의향을 최대한 반영한 시장 중심의 수급계획, 그리고 다양한 불확실성 요소를 고려한 시나리오 기반의 수급 전망 아웃룩으로 속히 전환돼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 및 제도 개혁, ESS 등의 유연성 자원 확보 계획, 송전망 확장 등 공적인 영역에 제한돼야 한다. 발전사업 허가는 현재와 같이 전기위원회에서 수급 현황 등을 고려, 최종 결정하면 된다.

미국과 영국, 에너지 안보를 중시하는 일본조차도 수급계획을 원별 목표 수치나 범위를 제시하는데 그치고 있다. 사업자들은 정부의 목표와 현실을 반영,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고 있으며 2022년 글로벌 에너지 위기 당시 우리와는 달리 일본의 LNG 현물 구입량이 극히 제한적이었다는 점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매우 크다.

▲ 28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가 진행되고 있다.
▲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가 진행되고 있다.

조성진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바람직한 전원구성계획은 국내외 에너지 및 전력 정책 여건 변화, 환경규제 변화 등의 불확실성을 완화해 안정적 전력수급을 담보해야 하지만, 현행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정책 불확실성을 오히려 더욱 키워 수급 안정성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

이러한 전력수급기본계획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장기 자원 적정성(resource adequacy)을 확보하기 위한 대안으로 용량시장(capacity market)의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특히 선도용량시장 제도는 현행 전력수급기본계획의 비효율성뿐만 아니라 구속력도 없고, 다른 투자자들의 투자의욕은 감퇴시켜 전략적으로 악용될 수 있는 건설의향 제도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시장친화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용량시장 도입과 동시에 정치논리와 정부개입은 최소화하고 전력정책 및 시장제도를 일관성 있게 추진하기 위해 독립성과 전문성이 보장된 규제기관의 재정립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

이상의 제도가 뒷받침될 때 기존 정부 주도의 전원구성계획은 독립적 계통운영자(ISO)가 수립하는 시나리오 중심의 아웃룩 방식으로 전환될 수 있다.

황태규 GS EPS 상무

과거 5~7차 전력수급계획은 공급 안정성 확보를 위해 대규모 원자력, 석탄, LNG 설비를 반영한 결과 탄소중립 시대에 대비하지 못했다. 반면 8차 이후 NDC 목표는 환경성에 치중한 나머지 대규모 한전 적자로 인한 사회적 이슈를 회피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의 개선을 위해 시나리오 방식의 수급 계획이 필요하다. 현행 계획이 적정 예비율 확보에 필요한 신규 발전기 반영 여부를 판단하는 데 따른 전원별 혹은 정치적 과열 경쟁의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11차 계획은 원전중심, 재생중심, 기설 석탄 및 LNG 활용 등 가능성 있는 몇 가지 시나리오를 정하고, 각 시나리오가 갖는 경제적, 환경적, 계통적 문제와 예상 비용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실제 신규 발전기 건설 여부는 불확실한 미래가 현실화하는 시점에서 전기위원회의 발전 사업허가 평가를 통해 결정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신규 발전기 건설 여부를 결정하는 ‘권력’을 내려놓고 시나리오 중심으로 전환해야 에너지 문제에 이념이 개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2030년에 발전량 23%를 담당하던 LNG가 불과 6년 후에 9%로 줄어드는 식의 비합리적인 계획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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