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신문] 김신종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는 행정고시 22회 합격 이후 산업자원부 및 환경부 등에서 오랜 기간 공직에 몸담았던 에너지 분야의 전문가다. 본지는 에너지의 기원에서부터 미래 에너지 전망에 이르기까지 김신종 교수의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통찰력이 담겨 있는 ‘김신종의 에너지 이야기’를 연재한다./편집자주

▲ 김신종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 김신종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경제개발 과정에서 ‘전력의 필요성’과 ‘에너지원의 다원화’를 절감한 정부는 1968년에 뒷날 고리원전으로 불릴 원전부지를 경남 기장에 선정했다.

원전건설은 당대의 과감한 도전이었으나, 이후 1970년대에 두 차례 세계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지지받는 시대의 과제로 부상했다. 고리원전은 1977년 시험발전에 성공, 1978년 4월 상업가동을 개시하면서 세계 원전시장에 조용히 첫 발을 내디뎠다.

원전건설은 초기에 웨스팅하우스(WH), 프라마톰(Frammatome), AECL, 컴버스천엔지니어링(CE)등 외국의 원전기술에 의존했지만 1984년 ‘원전기술 자립계획’을 수립해 한국표준형원전(KSNP)을 완성, ‘OPR1000’이라고 이름지었다. 이후 10기를 반복 제작하며 세계 원자로 제작분야에서 ‘가압경수로는 한국’, ‘비등경수로는 일본’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또한 1992년 ‘차세대 원전기술 개발계획’을, 1999년 ‘원전기술 고도화계획’을 각각 수립·추진한 결과 마침내 ‘APR1400’을 완성했고 이 모델로 UAE의 바라카원전 수주전에서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 원전 선진국들을 제치는 이변을 일으켰다. 이후에도 우리는 체코, 루마니아, 남아공,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원전 선진국들과 수주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영광도 잠시였다. 1979년부터 2011년까지 세계적으로 재앙 수준의 3대 원전사고가 일어났고, 원전반대 목소리에 따라 2017년 6월에 정부는 수명을 다한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공식적으로 ‘탈원전’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일본은 ‘원전제로’, 중국은 ‘신규원전 건설 중단’을 선언했다가 양국이 결국 일부 원전 재가동 또는 원전건설 재개로 선회(U-turn)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전기요금이 상승하고 전력난이 해소되지 않자 2015년부터 비록 일부이지만 기존 원전의 재가동을 표방했다. 중국 역시 원자력을 제외하고는 전력수요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 2012년 10월부터 보류했던 원전건설을 재개하고 2015년 2월부터는 신규 원전프로젝트의 승인을 개시했다. 중국은 동쪽 해안선을 따라 현재 가동 중인 원전 31기에 24기를 추가로 건설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 사이의 ‘거대 원전벨트’에 포위된 형국이며, 친환경 에너지원을 개발하고 있지만 여전히 같은 사정에 놓인 우리는 고민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우리 원전산업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설계분야, 시공분야, 부품조달분야 약 700여 기업 및 운전원, 기능공 약 2만명으로 이뤄져 있는 우리의 원전생태계는 그동안 참 잘 자라 왔다.

연속적으로 원전을 지으며 발전과 운영의 구조를 세련시켰고 관련 인력을 육성, 훈련시켰다. 그야말로 황무지에서 꽃을 피운 셈이다. 하지만 탈원전정책에 따라 지금까지 40년 축적한 성과가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다. 벌써부터 대학의 정원미달, 기술유출 등 사태가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참고로 영국은 1세대 원전을 다 폐쇄한 다음, 2세대 원전을 운영하다 3세대로 넘어가야겠다고 판단해 자국 원전건설에 한국을 주요 후보로 넣었고, 미국도 오바마 대통령 시절 원전을 다시 지으려고 하다 보니 많은 기술자들이 은퇴한 후여서 원전생태계가 활발히 살아있는 한국에 관심을 가졌다.

한편 지난 40년간 원전을 가동해온 우리는 아직도 그 후속처리가 미비하다. 주지하듯 원전에서는 두 가지 방사성폐기물이 발생된다. 하나는 작업복, 공구, 필터, 이온교환수지 등 방사능 준위가 낮고 반감기가 짧은 중저준위 방폐물이고 다른 하나는 방사능 준위가 높고 반감기가 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Spent Fuel, 사용후핵연료)이다.

중저준위 방폐물 처분장은 우여곡절 끝에 경주에 마련됐지만, 고준위 방폐물 처분장은 시일이 촉박한데도 아직 아무런 해결의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내 수조에 보관하고 있는데, 조밀 저장기준으로도 2020년을 전후해서 포화상태에 이를 전망이다. 인체로 비유하자면 먹는 입만 있고 배설구가 없는 것인데, 장차 그 인체가 어찌 될 것인가?

탈원전 로드맵에 따라 국내 원전건설은 중단될 것이지만, 우리 원전산업은 어떻게 해서라도 위축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원전 종사자는 현행 원전운영과 기술발전에 오히려 만전을 기약해야 하며, 정부는 탈원전 의지 이상으로 해외원전 건설시장을 겨냥한 정책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모순이 아니다. 우리는 수요에 따라 수요에 충실히 부응할 뿐이다.

한편 국내 원전들의 수명 소진에 따라 해체작업 및 기술이 현안으로 요구되고 있다. 우리는 안전한 해체에도 전력투구하면서 유용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 이 경험을 곧 도래할 블루오션에 가까운 세계 원전 해체시장에서 발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구체적으로 우리 원전산업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째, 국가별 특성에 맞는 진출 전략을 수립하고 둘째, 국내 원전뿐만 아니라 미국 등 원전 선진국들의 기술인력 부족현상을 감안, 인력송출을 위한 원전기술 인력을 양성해야 하며 셋째, 대형원자로 외에도 한국형 중형원자로와 소형원자로 모형을 개발, 상품의 다양화로 틈새시장(niche market) 진출 전략을 수립해야 하며 넷째, 더 나아가 4세대 원전기술인 고속증식로, 토륨원자로, 모듈형원자로의 기술개발 경쟁에도 뒤처지지 않도록 산업계, 연구기관, 정부 간에 적극적인 연계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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