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이후 대책 마련에도 여전히 부정적 인식 남아
비즈니스모델 고도화·지속가능한 정책적 뒷받침 필요

[에너지신문] 우리나라는 ESS(에너지저장장치) 상용화 능력 및 기술력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형발전소와 맞먹는 양의 전기를 저장하고 필요할 때 즉시 사용할 수 있는 ESS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가장 큰 약점인 간헐성을 해소해주는 역할로 인해 최근에 건설되는 재생에너지 발전소에는 필수품목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재 ESS산업에는 약 1만여개의 유관 기관(기업)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규모의 재생에너지 보급에 필요한 기술과 경제성에 최적화돼 있다. 태양광 발전비중이 큰 유럽에서는 일몰 후에 대규모 태양광 발전이 멈추면 낮에 생산한 전기를 ESS에 저장해 야간에 공급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ESS는 4차 산업혁명 시대와 정부의 에너지전환 및 탄소중립 정책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아이템으로 꼽힌다. 향후 신재생에너지와 시너지를 일으켜 고부가가치 일자리 창출과 국가경제 기여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ESS 화재라는 초대형 악재가 터지면서 한창 ‘잘나가던’ ESS 산업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이후 정부와 업계는 합동조사를 통해 화재 원인을 파악하고 회복을 위한 정책적 방안을 내놨으나 ESS에 대한 불신과 부정적인 인식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설상가상으로 REC 가격 폭락으로 태양광 발전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면서 태양광과 ‘찰떡궁합’을 자랑하던 ESS도 수익률이 좋지 않은 상황에 이르렀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전문가들은 ESS가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규모에 따라 사용 목적이 변화되므로 이에 적합한 기술, 운영, 비즈니스 모델이 한층 고도화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ESS가 앞으로 기술과 경제성의 경쟁력을 더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속가능한 정책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가 ESS 산업이 어려움을 딛고 에너지전환의 ‘게임체인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컨트롤 타워’ 부재 해소돼야
ESS 산업은 그동안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괄목할 만한 양적 성장을 거뒀다. 연간 약 1조원 규모의 국내 시장을 형성하는 차세대 산업이 된 것이다.

그러나 ESS의 양적 보급 정책의 성공 이후 질적 성장을 이끌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것이 업계의 우려다.

ESS와 관련된 재생에너지, 전력수급, 안전대책, 표준 및 인증 등 유관부서가 전문화되고 있으나 이를 통합해 전반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조정하는 총괄부서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ESS 화재 원인에 대한 2차 조사위원회의 발표가 있었고 산업부와 전기안전공사가 안전대책을 마련했음에도 불구,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안전 우려를 불식하는 홍보를 하지 않아 국민들의 불안감도 여전한 상황이다. 따라서 ESS 총괄부서를 조직해 최우선적으로 ESS의 안전성을 홍보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RPS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
정부는 태양광 발전 등 재생에너지에 ESS를 함께 사용할 경우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 지원제도는 그동안 ESS 산업 성장과 기술력 향상의 기반이 됐으나, 현재는 국내 ESS 업계가 고사할 위기에 처해 있어 제도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현재의 RPS제도 하에서 원전, 석탄화력, 천연가스 등 대형 발전소는 의무적으로 발전량의 일정 비율을 재생에너지로 생산하거나 REC를 구매해야 한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총 소비 전기의 20%까지 공급하는 재생에너지 3020 정책에 따라 RPS 시장 규모는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2019년 기준 재생에너지 공급 비중은 약 5%로, 정부는 2040년까지 35% 내외, 2050년까지 100%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RPS 제도 초창기에는 REC 가격이 매우 높았으나, 현재는 재생에너지가 급격하게 많이 공급되면서 가격이 폭락, 신재생 발전소의 수익이 크게 떨어졌으며 이에 따라 태양광과 짝을 이루는 ESS의 수익도 함께 급감했다.

수십MW 규모의 대형 태양광 발전소와 정부의 특별 지원(한국형 FIT)이 시행되고 있는 100kW 미만 소규모 태양광의 경우 아직은 수익성이 있으나, 재생에너지가 보급될수록 경제성 하락은 피할 수 없을 거란 예측이다.

ESS 업계는 이러한 원인이 정부가 수립한 연도별 재생에너지 의무할당량보다 많은 재생에너지 전기가 생산되고 있기 때문으로 파악하고 있다. 정부도 이를 인지하고 있지만 보급목표 조기·초과 달성이라는 성과를 위해 시장경제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방치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여기에 정부가 재생에너지에 ESS를 설치할 경우 REC 가중치 부여를 없애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어 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대안으로 재생에너지의 문제를 해결할 공공 ESS를 설치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동안 ESS 사업에 참여해 노하우를 보유한 우수 중소·중견 기업의 일거리가 공공 ESS 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적으로 공공 ESS가 현재 기준 6만여개에 달하는 재생에너지 발전소에 대응할 수 있는 지도 미지수”라며 “실효적인 대안이 없으면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

에너지전환 시대에서 RPS 체제가 한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업계는 입을 모은다.

최소한 ‘그리드 패리티’ 수준으로 태양광 발전소의 수익성을 보전해야 하며, ESS도 이에 준하는 수준으로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일반 발전소 시장인 전력거래시장에 재생에너지를 편입시키는 방안이 부상하고 있다.

24시간 중 원하는 시간대에 고품질의 전기를 공급할 수 있도록 태양광 발전에 ESS를 설치하는 조건으로 전력거래시장에서 일반 발전소와 경쟁 입찰하는 방안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 태양광 발전소와 ESS 설치비용은 기술 개발 및 대량 보급으로 크게 줄어들었으며, 보급이 확대될수록 더욱 낮아져 전력거래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게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수출화 전략과 지원 방안
세계적으로 선진국 중심의 ESS 사업이 발주되고 있고, 이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수주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이들 발주자는 언젠가 ESS의 중요성과 용도를 실제 경험한 후에 보다 실용적인 유용성을 마련한 후 사업자로 변신, ESS 시장을 주도할 수도 있다.

앞으로도 국내 ESS 시장 규모는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나, 궁극적으로는 더 큰 세계 시장을 목표로 해야 할 것이다.

실질적으로 ESS의 엔지니어링을 담당하고 있는 국내 ESS 중소?중견 기업들이 재생에너지의 특성, 규모, 환경, 안전 등 제반 여건에 따른 최적의 ESS 사업화 개발에 집중해 세계적인 ESS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수출 전략과 지원책 강구가 필요하다고 업계는 강조한다.

업계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는 우선적으로 정부의 글로벌 네트워크에 ESS 산업이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원전 수주를 위해 산업부 장관이 체코를 방문한 것처럼 글로벌 시장을 타겟으로 한 ‘ESS 세일즈’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에너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