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크라 침공·경제 회복·친환경 등 유가상승 원인 다양
고유가 지속 시 정유업계 부담 커져…新 사업 모드 ‘활발’

[에너지신문] 국제유가는 우리나라 경제와 국민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현재 국제유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현재 국제유가의 고공행진은 원유 수급 문제가 쉽사리 풀리지 않아서다. 코로나19 장기화 속 움츠러들었던 민간 소비가 회복되고, 승용차 등을 이용한 활동도 늘면서 원유 수요는 증가하고 있지만 공급이 이를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때 중국의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봉쇄와 주요 나라의 비축유 방출 합의 등의 영향으로 잠시 안정세를 보였던 국제유가가 다시 유럽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중단 추진과 중국의 봉쇄 해제 가능성 등으로 상승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12일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11일(현지시간) 4월 브렌트유는 107.51달러,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105.7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각각 전일대비 5.05%, 5.95% 오른 금액이다. 두바이유도 전일대비 0.19달러 내린 두바이유는 102.94달러에 체결하며 국제유가는 연일 100달러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정유업계도 ‘비상모드’에 돌입하며 위기탈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달리는 이유는?
올해 국제유가는 100달러를 돌파한 지 이미 상당 시간이 흘렀고, 125달러는 물론 최악의 경우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열린 ‘2021 석유 컨퍼런스’에서 올해 유가를 전망하면서 두바이유 기준으로 고유가 시 배럴당 연평균 80달러, 저유가 시 65달러로 예상한 바 있다. 미국, 중국 양대 소비국과 아시아 신흥국이 수요 증가를 주도하면서 석유 수요는 증가세를 이어가고 2019년 수준을 상회할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하지만 유가상승 폭이 생각보다 컸다. 이 같은 유가 반등의 주요 원인으로는 미국 원유재고 감소와 주요 산유국의 더딘 증산 등이 꼽힌다. 친환경 기조 확대로 미국 셰일 기업의 신규 투자가 지연되는 가운데 최근 OPEC+(석유수출국기구와 러시아 등 기타 산유국의 협의체)의 증산량도 목표에 미달한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국제사회의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로 원유 공급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겹치면서 국제유가 상승세는 한동안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국제유가는 지정학적인 리스크뿐 아니라 수급 펀더멘털의 영향을 받는 품목으로, 공급보다 수요가 커지니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당연지사. 이에 미국 등 국제에너지기구(IEA) 회원국들이 비축유 6000만배럴을 방출하기로 했으나 유가를 억제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국제유가의 초영향권에 속한다. 시간을 되돌려보면 우리나라는 2000년대부터 ‘국제유가 100달러’가 반복되는 위기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2008년에는 중국 등 세계적인 석유 수요 급증으로 100달러가 넘는 초고유가 시대를 연출했고, 이후 6년간 평균 유가가 100달러를 넘나드는 고유가 시대가 이어져 왔다. 그때마다 정부는 물가, 무역수지 영향 최소화를 위한 위험한 외줄타기를 해왔다. 그리고 8년만에 또다시 ‘국제유가 100달러 시대’가 도래하며 비상 상황을 맞고 있다.

▶▶▶ 그렇다면 국제유가는 떨어질까?
현재 국제유가 오름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 올라갈 것 같은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올해 원유 수요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 코로나19 사태 등에 따른 영향으로 글로벌 경제 성장 둔화로 석유수요가 크게 늘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제 경제가 위축되더라도 국제유가는 하락할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이 많다. 이와 같은 이유는 산유국들의 원유 생산이 크게 늘리지 않을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더구나 경기 위축으로 회원국들이 적극적인 증산에 나서지 않을 또 다른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기에 보통 10년 이상의 긴 주기를 갖고 고유가와 저유가를 오가는 데, 지금이 고유가 시점이라는 의견도 많다. 보통 석유회사는 유가가 오르면 수익의 많은 부분을 신규 유전 개발에 재투자하고, 이후 5~10년 뒤 생산이 늘어 공급 과잉으로 유가는 떨어진다.

또 5~10년 뒤면 원유 생산이 줄어 유가는 다시 상승하게 된다. 이것이 유가가 10년 주기로 오르내리는 배경이다.

때문에 2014년 저유가 시대가 도래했을 때 향후 미국 셰일오일의 생산 감소와 세계 석유개발 투자 위축이 수년간 지속한다면, 2025년 이후 다시 고유가 시기가 올 가능성이 무척 높다는 전망이 많았다. 또한 유전 개발에 보통 10년 가까이 걸리는데 현재 생산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그 이전 투자의 결과다.

2015년부터 투자가 급감했으니 2025년경부터는 세계 원유 생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미국의 셰일오일도 2021년부터는 생산 증가 폭이 둔화하다가 2025년에는 정점을 찍고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구나 전 세계 정유업체들이 ‘2020년 석유 파동’으로 대유행 초기 에너지 수요가 줄면서 국제유가가 폭락하며 산업 전반에 걸쳐 파산이 속출, 증산에 대한 투자를 더 빨리, 과감하게 하지 못하는 요인이 됐다.

환경도 많이 달라졌다. 전 세계가 기후 위기를 통해 ‘친환경’에 집중하면서 유럽의 주요 석유회사들은 탄소배출량을 줄이라는 투자자들의 압력에도 시달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영국 석유업체 BP PLC는 투자 비용을 기존의 75% 수준인 120억달러로 삭감하고, 시추 중인 유전과 가스전의 개발도 재검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즉,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석유를 더 늘리는 환경이 쉽지 않고, 당분간 국제유가 상승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정유업계, 지금은 위기관리 능력 필요
지금까지만 보면, 정유업계는 국제유가 상승과 이에 따른 정제마진 회복으로 화색이 돌았다.

1분기 실직을 보면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한 것. 국내 정유 4사는 정제마진 강세에 힘입어 올해 1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업계 1위 SK이노베이션은 석유사업부문에서만 1조 5067억원에 이르는 영업이익을 냈다. S-OIL과 현대오일뱅크는 각각 1조 3320억원, 7045억원 영업이익을 올렸다.

GS칼텍스도 영업이익 1조 812억원을 기록하며 전년동기 대비 70.9% 증가세를 보였다. 정제마진과 국제유가 상승이 정유사에게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정유업계는 ‘이제 안 좋을 일만 남았다’고 하소연한다. 고유가가 지속되면 글로벌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석유제품 수요가 위축돼 정유업종에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크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

고유가가 장기화하면 정유사들은 가동률을 하향 조정이라는 극단의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며, 현재 상황을 대비하고 있다. 국제유가 강세가 지속되면 수요 감소분을 반영해 가동률을 낮출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한 관계자는 설명했다. 고유가 기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정유사들은 미래 먹거리 사업에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정유업계는 우선 정유 비중을 낮추고 정제시설을 활용한 종합화학회사로의 변신을 추구,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한편 수소, 그린 모빌리티 등 친환경 사업 진출을 적극 추진하며 성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본격적인 탄소중립시대 도래에 발맞춰 정유사들은 에너지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이에 따른 선제적인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친환경 사업인 배터리 투자에 집중하고, S-OIL은 수소생태계 조성을 위한 프로젝트 참여에 적극적이다. 또한 현대오일뱅크는 차세대 화이트 바이오 사업 추진 등 수소화식물성 오일 설비 생태계 구축에 나선다.

GS칼텍스는 주유소 네트워크가 신사업 핵심자산이 될 것으로 기대, 한국형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실증에 적극 참여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정유업계는 블루수소 생산, CCU(이산화탄소 포집 및 활용) 기술개발 및 적용, 신재생 에너지 사용, 친환경 사업으로 다각화 등 변화를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 석유만 팔아선 못 살아남는다는 경각심이 넘어 변화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에너지 전환에 속도를 내게 한 것이다. 지금이 바로 정유업계의 실력인 ‘위기관리’를 뽐낼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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