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광물 ‘양해각서’ 남발…독자적 공급망 구축 시급
공급망 구축 첫걸음, 해외자원개발 생태계 복원부터

[에너지신문] #사례1. 2022년 9월, LG에너지솔루션은 IRA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캐나다 토론토에서 아발론·엘렉트라·스노우레이크 등 캐나다 기업 3곳과 리튬·코발트 등 핵심광물 공급·가공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 3건을 맺었다.

#사례 2. 2021년 11월, 삼성SDI는 QPM의 테크 프로젝트에 참여해 최대 5년간 연간 6000톤 규모의 니켈을 공급받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사례 3. 2022년 9월, SK온은 글로벌 리튬과 호주 퍼스시에서 리튬 안정적 공급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사례 4. 2022년 12월,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응우옌 홍 디엔 베트남 산업무역부 장관과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을 비롯한 총 3건의 협정 및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

위 사례는 중국 배터리 제조 광물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광물 조항에 대응하고자 수입 다변화를 위해 동분서주했던 우리 기업과 정부의 이야기 중 일부다.

이는 모두 양해각서(MOU) 체결로 진행됐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양해각서와 계약서는 유사한 듯 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어떠한 거래를 시작하기 전에 쌍방 당사자의 기본적인 이해를 담기 위해 진행되는 것이 양해각서이며, 이는 체결되는 내용에 구속력을 갖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법률적 구속력이 있는 계약서와는 달리, 양해각서는 사전 업무협약이라는 특성만을 지녔을 뿐이다. 때문에 ‘원활한 업무진행,’ ‘공동협의를 통한 업무 및 친선관계 개선,’ 특히 ‘대외 홍보’의 역할을 위해 주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첫번째 사례로 든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캐나다 아발론, 스노우레이크 등과 맺은 양해각서는 ‘구속력 없는 양해각서(Non-Binding MOU)’로, 2023년 시행될 예정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항하기 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봐야 한다.

아발론이나 스노우레이크로부터 광물을 수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리튬 원광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도를 높여 배터리 제조용으로 정련·제련하는 시설이 없다.

다시 말해, 소유 중인 리튬 제련소가 없다. 제련소도 없는데 어떻게 광물을 생산할 수 있겠는가. 이런 류의 양해각서는 주가 방어 차원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부의 경우, 방어할 주식도 없는데 행태는 기업과 별반 다르지 않다. 새 정부 들어 에너지 수입 가격이 치솟으면서 비상경제민생회의, 국정감사 등에서 자원개발 중요성이 강조됐지만 거기까지였을 뿐, 더 나아가진 못했다.

핵심광물의 직접 개발은 고사하고 과거 정부와 마찬가지로 양해각서만 남발하고 있다. ‘양해각서 체결=핵심 광물 확보’ 란 공식이 통했다면, 우리 경제는 이미 오래전에 탈중국 공급망을 구축했을 것이다.

지난 10년간 수 백건의 광물관련 양해각서(MOU)가 맺어졌지만, 실질적인 핵심광물 직접 개발은 단 한 건도 이뤄지지 못했다.

상황은 점점 나빠져만 가고 있다. 이제는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믿지 못할 상황이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일부 조항으로, 미국 밖에서 생산된 전기차와 배터리의 핵심 자재인 리튬, 코발트, 니켈 등을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맺은 국가를 통해 공급받지 못하는 제조사는 최대 7500달러의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최근 현대자동차와 다른 한국 반도체‧전기차 제조업체들이 미국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는데도, 이 법안은 한국 업체들을 배제했다.

미국 제조업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한국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등에 칼이 꽂힌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유럽연합(EU)까지 주요 광물 원자재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가칭 ‘핵심원자재법(CRMA)’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CRMA는 주요 원자재의 역내 공급 비중을 높이기 위해 역내에서 생산된 원자재가 사용된 제품에만 세금과 보조금, 통관절차 등에서 혜택을 주는 내용으로, 내년 1분기 안에 입법 예정이다.

CRMA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과 유사한 법안으로서, EU의 CRMA 입법 목표 중 하나가 광물 공급망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므로,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을 공산이 크다.

기존의 광물자원 부국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멕시코와 칠레 등 대미 FTA 체결 자원 부국에서 핵심광물로 꼽히는 리튬·니켈·코발트·희토류 등을 두고 벌써 자원 국유화, 무기화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실제로 멕시코 의회는 2022년 4월 19일 리튬 탐사·개발·채굴 권한을 국영 기업에만 맡기겠다는 국유화 법안을 통과시켜 정부가 독점하도록 광업법을 개정했다. 칠레도 2022년 3월 리튬 광산을 국유화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 초안을 만들었다.

인도네시아는 2019년부터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 니켈을 원광 형태로 수출되는 것을 막고 있다. 대신 자국 내 제련소에서 직접 제련하는 등 부가가치를 높여 제품 형태로 수출하도록 하고 있다.

같은 해 유럽연합은 인도네시아가 니켈 등 원자재에 대한 접근을 부당하게 제한했다며 WTO에 제소했다.

최근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WTO의 무역분쟁 심판에서 인도네시아가 패소하더라도 지금의 수출 금지 정책을 계속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인도네시아는 오는 6월부터는 알루미늄의 원광인 보크사이트와 주석, 구리 등의 원광 수출도 금지할 계획이다.

이처럼 신(新) 자원민족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국제 규범을 따르지 않겠다고 거리낌 없이 공언하는 글로벌 공급망 환경에서 우리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중간재 수급을 위한 MOU 남발이 아니라, 우리 정부가 직접 광물 개발에 뛰어들어 독자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뿐이다.

‘중희토류 공급망’ 구축은 촌각을 다툴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희토류는 다른 배터리 광물과 다르게 중간재 수급을 위한 MOU를 맺을 대체 국가나 기업조차 찾기 어려운 구조다.

특히 중희토류 광산개발은 기술뿐만 아니라 혹독한 환경 조건, 시공간적 부담, 지역적 한계 등 위험도가 높아 대기업조차 접근하기 쉽지 않은 분야다.

자원 부국으로서 세계 최대의 희토류 매장량을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해외 중희토류 광산개발에 혈안이다. 부익부 빈익빈이 따로 없다. 자원 빈국인 우리는 민간기업의 등만 떠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해외자원 확보 방안으로는 △광업·조업권 등 무형 자산 취득을 위해 외국 법인에 출자 또는 융자할 때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거나 △자원개발업을 하는 해외 자회사의 배당금 익금불산입이 적용되는 지분율을 완화 시켜주는 것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으로는 광물 공급망 구축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기간이 많이 소모된다.

특히 석탄, 가스 등 화석 연료와 철, 구리 등 일반 금속과는 달리, 희소금속을 비롯한 핵심 광물에 대한 해외자원개발 생태계는 지난 10여년간 무너져내려 곧 붕괴 직전에 놓여 있다.

민간 기업에는 더 이상 핵심광물의 해외자원 개발에 참여할 인력도 기술도 여력도 남아있지 않다. 기후변화, 탄소제로, 탄소국경세, 대만-중국간 무력 충돌 등 우리 경제에 충격이 될 만한 공급망 이슈들이 즐비하게 널려있다.

대비책으로 공공부문의 해외자원개발 능력을 극대화시켜야 한다. 정부는 2023년 광물 공급망 구축을 위한 첫걸음으로 공공부문의 해외자원개발 생태계부터 복원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앞에서 이끌고 민간이 뒤에서 밀어주는 방식으로 공급망이 구축돼야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시간이 많질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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