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발전업계 “반시장적 규제, 국가 에너지공급체계 붕괴 우려”
“한전 적자 타개하려, 근본 설계부터 잘못… 원점 재검토해야”

[에너지신문] 정부의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를 둘러싸고 민간 발전사업자가 제도 폐지와 원점 재검토를 강하게 요구하며 반발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시행 이후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민간 발전사업자의 손실규모가 2조원에 이르고, 30%가 넘는 기업들이 적자 경영에 빠졌다며 국가 에너지공급체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32조6000억원의 손실을 낸 한전의 적자를 타개할 방법중 하나로 에너지전문가와 민간발전사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1월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위원회를 거쳐 12월부터 SMP 상한제를 시행하고 있다.

SMP상한제는 전력도매가격(SMP) 급등기에 발전사업자가 생산한 전기를 한전에 판매하는 도매가격을 규제하겠다는 일종의 가격 제한 제도다. 전력도매가격 급등 시 발전사들에게 정산해주는 가격을 시장가격이 아닌 인위적인 상한가격(지난 10년간의 시장평균가격의 1.5배)으로 규제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 전력거래소 본사 전경.
▲ 전력거래소 본사 전경.

SMP(System Marginal Price)는 시간대별 전기수요•공급을 충족하는 가장 비싼 발전기 비용을 시장가격으로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같은 SMP상한제에 대해 민간발전업계에서는 산업부가 SMP상한제를 지속할 경우 전력산업 및 전력시장에 대한 인위적인 가격규제가 야기하게 될 부작용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국집단에너지협회 등 12개 에너지협단체가 지난 21일 서울 LW컨벤션센터에서 SMP 상한제 종료 및 보상안 마련 촉구를 위한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한국전력의 경영악화를 SMP 상한제로 막는 건 '언발의 오줌누기'이며, 민간의 동반 부실을 초래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도 이같은 이유다.

◆ SMP상한제 부작용… 전력시장 붕괴 가능성 경고

산업부는 글로벌 연료가격 급등 등으로 인한 한전의 경영부담 최소화 및 전력소비자 보호를 위해 SMP상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한전이 발전사들에게 지급하는 ‘도매가격’과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소매가격’이 완전하게 유리돼 있는 현실에서 SMP상한제 도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반발한다.

실제 2022년 전력도매가격이 200원(KWh당) 수준까지 급등했던 시기에도 전기요금은 110원대를 유지했으며, 전력도매가격이 68원까지 급락했던 2020년에도 전기요금은 110원 수준이었다는 것.

즉 그동안 전력도매가격의 등락이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적이 없으며, 최근 전력도매가격의 급등은 국제적인 연료비 상승이 근본 원인인데 이를 애꿎은 발전사 책임으로 전가하는 무책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관련업계 일부 전문가들도 SMP상한제와 같은 인위적인 규제로 인해 오히려 전력산업 밸류체인 곳곳에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낸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력산업에 대한 인위적인 가격규제는 전력산업을 넘어 에너지산업 전반으로 부작용이 파급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특히 국내 LNG직도입 발전사들은 천연가스를 경쟁력있는 가격으로 직접 도입해 국내 전력도매가격 하락과 국가 에너지 안보에도 일정부분 기여하고 있다”면서 “SMP상한제 등으로 전력판매가격을 규제받게 되면 직도입사들이 경쟁력있는 천연가스를 도입할 유인 자체가 사라져 중장기적으로는 전력도매가격이 오히려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일부 관련업계에서는 러-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해 글로벌 LNG 물동대란이 심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SMP상한제’라는 규제로 인해 민간 발전기업들의 LNG 도입이 동력을 잃게되면 국가 천연가스 수급까지 악화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민간 LNG 직도입 발전사들의 경영상황이 악화되면 값싼 천연가스를 도입할 기회가 있어도 그럴 능력이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 발전사업자는 2023년 연료 구매 및 정비를 위해 추가 리파이낸싱이 필요하지만 상한제 도입으로 영업손실이 발생해 발전사의 자금경색이 심화되고 있다.

서울 목동에 위치한 집단에너지 시설.
▲ 서울 목동 집단에너지 시설 전경(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음).

발전사들이 SMP보다 도입 단가가 높은 연료비를 보전 받는다고 하더라도 연료비 외 발전소 정비, 발전기 냉각용수, 발전기 감가상각에 의한 효율성 저하 등 발전소 운영 과정에 발생하고 있는 비용에 대해서는 보전해주지 않아 여전히 일부 발전사들은 영업손실이 발생한다.

특히 한계LNG발전과 집단에너지는 2022년 상반기 이미 23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상황으로 SMP상한제로 발생하는 영업손실이 고효율 LNG발전에도 확대돼 전력 공급에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

지난 2월 17일 시행된 전력거래소 규칙개정위원회에 따르면 SMP상한제가 처음 도입된 12월의 평균 SMP와 SMP상한의 차이로 민간발전사의 정산금이 한달간 LNG 3461억원, 비중앙(신재생 등) 3262억원 등 총 6840억여원이 감소했다. 원자재 가격이 지금과 같이 유지된다고 가정할 경우 2023년 2월까지 민간 발전사의 정산금은 약 2조 1000억원이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실제 이로 인한 민간발전사들의 피해도 가시화되고 있다. 대구지역 집단에너지사업자인 A사는 올해 8월부터 연료비 지불이 불가할 정도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올해 12월에 이르면 채무불이행 발생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양주, 의정부, 남양주 등 경기지역 집단사업자로 5만 4000여 세대에 지역난방을 공급하고 있는 B사도 연간 약 700억에 이르는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아울러 민간발전사들의 정산금 감소는 투자 여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부가 조사한 2023년 민간발전 및 집단에너지사업자 투자계획에 따르면 민간발전사 2조 4884억원, 집단에너지사 8826억원 등 올해 총 3조 3710억원 수준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계획이다. 즉 이들 민간발전사들의 투자 여력 상실로 대규모 투자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자원빈곤국이다. 보다 저렴한 가격에 자원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결국 에너지산업의 핵심 경쟁력일 수 밖에 없다.

민간기업들은 그동안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중장기 에너지 도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경쟁력있는 가격에 천연가스를 도입해 국가 에너지 안보에 기여해 왔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같은 민간기업들의 경쟁력 제고 바탕에는 해외 자원개발에서 도입, 생산, 판매로 이어지는 에너지 산업 생태계 전반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에너지산업은 전후방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밸류체인 끝단인 전력가격을 규제하면 그 파급효과가 자원개발, 도입 등 전력산업 전체로 확대돼 결국 산업 생태계 전체가 도미노처럼 붕괴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즉 산업부의 지속적인 무리한 SMP상한제 추진은 결국 에너지 안보를 해치고 미래 에너지산업 육성까지 가로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SMP 상한제, “원점 재검토” 주장 근거는.

앞서 산업부는 SMP상한제 도입 배경으로 한전의 도매가격 부담 개선을 꼽았지만, 최근의 SMP 상승기조는 국제 연료가격 폭등으로 인한 원료비 상승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그러나 SMP상한제는 원료비가 아닌 판매가격을 규제하겠다는 발상에서 설계됐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

이처럼 기본적인 도입 취지부터 엇나간 SMP상한제는 제도 세부내용 곳곳에 독소조항이 많다는 것이다. 먼저 상한가격과 정산가격의 기준 자체가 각기 달라 발전업계 입장에선 불합리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산업부가 밝힌 SMP상한제 개정안에 따르면 직전 3개월간의 SMP 평균이 과거 10년간 월별 SMP 평균가격의 상위 10%에 해당할 때 적용한다. 더 큰 문제는 정산 가격인데, 과거 10년간 평균 SMP 가격의 150%선으로 제한하겠다는 것이 산업부 입장이다.

상한제 발동여부는 과거 10년 시세 중 최상위 10% 구간과 비교해 결정하면서, 정작 정산 가격은 과거 10년 시세 평균보다 약간 높은 수준으로 정하겠다는 발상이기 때문에 논리도 근거도 부족하다는 비판이다.

▲ 집단에너지협회 등 에너지 관련 협단체들은 지난 21일 SMP 상한제 종료 및 보상안 마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 집단에너지협회 등 에너지 관련 협단체들은 지난 21일 SMP 상한제 종료 및 보상안 마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미세한 시장가격 차이가 상한제 발동여부를 결정하는 것에 비해 가격 규제 수준은 지나치게 징벌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민간발전협회의 분석에 따르면 이를테면 지난해 7월 SMP상한제가 도입됐다고 가정할 경우 불과 0.5원 차이로 상한제가 발동되는 반면 발전사들은 기존 시장가격 대비 정산금액이 17원/KWh이나 급감(155.9원/kWh→133원/kWh)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부는 해외 일부 국가들도 전력도매가격 상한제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이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업계 주장이다.

상한제를 운영중인 국가는 인위적인 전력시장 개입이 최소화되도록 상한수준을 높게 설정하거나, 최근 같은 에너지가격 급등시 가스 등 원료비를 규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미국(텍사스주 제외)의 경우 가격 상한금액이 고정돼 있고, 상한수준($1000)또한 최근 가격($99, 지난해 7월 중순 기준) 대비 10배나 높아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 있다. 스페인, 포르투갈의 경우에는 발전용 가스가격 상한을 정하는 원료비 규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산업부가 내놓은 SMP상한제는 한전의 경영 개선에도 결코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업계의 일관된 입장이다.

민간 발전업계의 관계자는 “SMP상한제라는 땜질식 해법으로는 한전의 적자 개선은 고사하고 민간 발전업계만 고사상태로 내몰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취지도 방법도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는 SMP상한제에 대해 민관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원점부터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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