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소재 개발·방사선 의약품 제조 중요 도구
그래핀 수소센서 기술, 수소산업 전반 활용 가능

[에너지신문] 가속기에서 발생하는 입자빔은 이 세상의 어떤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고, 인류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입자빔은 일반인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이미 인류의 과학기술 발전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가속기를 통해 가속된 입자 형태의 이온은 큰 에너지를 가지며, 빠르게 움직이는 이온을 여러 가지 물질의 원자들에 부딪히면 물질 구조를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입자빔은 양재 소재 등 첨단 소재를 개발하거나 암을 치료하는 방사성의약품을 만드는데 중요한 도구가 된다.

초저선량 이온주입 장치 개발로 미래 양자소재 개발 길 열어

양자컴퓨터, 양자센서, 양자정보통신 등 양자정보과학 연구에 대한 경쟁이 전 세계적으로 치열한 가운데 양자 특성을 구현할 소재로 점결함 기반 양자소자가 주목받고 있다.

점결함은 고체 내 존재하는 원자 하나 정도 크기의 작은 결함을 뜻한다. 점결함 기반의 양자소자는 양자 특성이 구현되기 어려운 상온에서도 작동이 가능하고, 우수한 양자적 특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원자 하나 크기 정도의 점결함을 아주 적은 양만 생성시켜야 하고, 원하는 구조로 정밀히 배열해야 하는 등 구현 난이도가 높아 연구에 어려움이 있었다. 최근 초저선량 이온주입 기술을 이용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해외에서는 해당 기술을 개발, 관련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지만 국내에는 해당 기술이 없어 해외 연구에 의존해야만 했다.

이에 연구원은 지난해부터 초저선량 이온주입 기술을 개발해왔으며, 올해 초 장치 개발과 성능 검증을 완료했다. 연구진이 개발한 기술은 물질 내 아주 적은 양(108ions/cm²)의 이온을 주입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아주 적은 양의 단일한 점결함을 원하는 밀도로 생성할 수 있어 국내 양자소재 개발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현재 H+, He+, 14N+, 15N+의 이온을 제공하고 있으며, 연말에는 양자소자 제작에 필요한 C+, Si+, N2+, Sn+ 등의 이온 종을 추가 개발해 연구자들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초저선량 이온주입 기술이 점결함 양자소자 구현에 필요한 기초 기술인만큼 관련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다.

▲ 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초저선량 이온주입장치.
▲ 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초저선량 이온주입장치.

우주 방사선에 의한 반도체 오작동 검증...미래 우주시대 대비

반도체는 차세대 이동통신, AI, 드론, 자율주행차, 스마트기기 등 모든 첨단 기기에 탑재되는 핵심부품이다. 다만 최근 첨단 기기의 증가와 더불어 우주·대기 방사선에 의한 반도체 오작동도 함께 늘고 있어 이런 반도체 오류를 사전에 잡아내는 것이 중요해졌다.

우주 방사선은 실제 우주환경에 존재하는 방사선을 의미하며, MeV(메가전자볼트)급 에너지를 가지는 양성자가 85%를 차지한다. 이런 우주 방사선이 대기 중의 원자핵과 반응해 발생하는 2차 방사선을 대기 방사선이라고 하며, 주로 중성자로 구성되고 일부가 지상까지 도달하고 있다. 이런 고에너지 방사선이 반도체 내로 들어가면 반도체소자 내부에서 데이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런 오작동 현상을 소프트 에러라고 한다.

연구원 양성자과학연구단이 보유한 100MeV 양성자가속기를 활용하면 기존 대기‧우주 방사선이 유발하던 소프트 에러 상황을 단시간 내 모의 구현해낼 수 있다. 양성자가속기는 반도체에 각각 100MeV급의 양성자와 25meV(밀리전자볼트)급 열중성자를 조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반도체 내 방사선 취약 위치나 소프트 에러 발생률 등을 규명할 수 있다. 사전 대비뿐만 아니라, 추후 마련한 소프트 에러 대응 방안의 효과를 측정하는 데에도 적합하다.

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JEDEC)에서는 반도체의 방사선 영향평가를 위한 표준 및 평가 절차를 제정했으며, 2022년에는 연구원의 양성자가속기가 JEDEC로부터 방사선 영향평가 인증시설로 등재됐다.

우리나라는 소프트 에러 평가에 있어서는 전량 해외에 의존하는 상황이었는데, 인증시설 등재로 연구원이 국내 반도체 제품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더욱 활용될 전망이다. 지난 8월에는 연구단에서 우주에서 사용할 장치·부품의 성능을 지상에서 시험해 볼 수 있는 우주환경모사장치를 개발했다. 기존 온도 및 진공환경에 더해 우주 방사선 환경까지 모사한 것은 국내 최초다.

‘뉴스페이스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 우주 산업의 활성화에 큰 활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수소센서 시스템 개략도.
▲ 수소센서 시스템 개략도.

그래핀 등 신소재 융복합 기술 개발로 탄소중립시대 가속화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수소차 등 수소경제가 대두됨에 따라 수소 감지센서 기술은 수소 산업의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

수소는 무색·무취의 가벼운 기체로, 공기 중 누출 시 폭발할 위험이 크다. 때문에 수소 저장 시설, 수소차 등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소 가스 누출을 감지하는 안전한 센서가 필요하다.

기존에는 기체를 흡착하고 포집하는 소재로 신소재인 ‘그래핀’을 많이 사용했지만, 수소만을 선택적으로 감지하는 데는 복잡한 화학공정을 거쳐야 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연구원은 그래핀에 이온빔을 조사해 수소를 선택적으로 감지하고 농도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센서 소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관련 국내 특허 출원을 마치고 지난 8월에는 국내 업체에 기술을 이전했다.

연구원에서 개발한 그래핀 수소 센서 기술은 마이크로 크기로 작게 만들 수 있어 수소센서가 필요한 다양한 부품과 장소에 모듈 또는 제품 형태로 삽입이 가능하다. 자동차, 광업, 의료, 환경, 스마트시티 등 수소 산업 전반에 활용될 수 있다.

특히 소형화에 적합해 필요한 곳에 큰 부피를 차지하지 않고 설치가 가능하므로 실용적이고 경제적이다. 향후 수소 감지 센서를 활용한 다양한 제품이 상용화된다면 탄소중립 시대를 빠르게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 경주 방사성동위원소 생산시설에서 핫셀을 이용해 구리-67 생산법을 연구하고 있다.
▲ 경주 방사성동위원소 생산시설에서 핫셀을 이용해 구리-67 생산법을 연구하고 있다.

차세대 방사성의약품 개발 통해 암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입자빔을 활용하면 의료·산업용으로 활용 가능한 다양한 방사성동위원소도 만들 수 있다.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는 방사성의약품의 주원료로, 인체 내로 투여하면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나 SPECT(단일광자단층촬영)와 같이 방사성동위원소가 방출하는 감마선을 이용해 암 조직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다.

또한 보다 높은 파괴력을 가지는 베타선과 알파선을 방출하는 방사성동위원소는 암세포를 파괴하는 치료제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해 방사선 치료(therapy)와 진단(diagnostics)을 동시에 할 수 있는 테라노스틱스(theranostics) 핵종으로 구리-67이 주목받고 있다.

구리-67은 의료 진단용 감마선과 대장암, 방광암 등 암세포를 죽이는 치료용 베타선을 모두 방출하는 방사성동위원소다.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할 수 있고, 기존 동위원소에 비해 반감기(2.5일)가 짧아 체내 피폭도 상대적으로 적어 차세대 방사성의약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반감기가 짧아 외국으로부터의 수입도 쉽지 않다.

이에 연구원은 경주 방사성동위원소 생산시설에서 100MeV 양성자빔을 이용해 구리-67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얼마 전 연구원은 기존 대비 최대 4배 이상의 구리-67 생산 수율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개발, 특허를 출원했다.

이 기술을 적용해 2025년부터는 한 번에 약 400mCi(밀리퀴리) 이상의 구리-67을 생산해 국내 핵의학과에 공급할 계획이며, 수요에 따라 점차 생산량을 늘려 한번에 1Ci 이상의 구리-67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이는 국내 연구용 수요를 충족하며 임상 시험에도 적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앞으로도 연구원은 입자빔을 활용한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 생산으로 국민 의료 복지에도 기여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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